지난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까지 제기됐던 러시아 경제가 올 들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주가가 급등하고 통화가치가 반등하는 등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서방국의 경제 제재와 국제유가 급락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이다. 올해 러시아 경제는 6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 전망되지만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판단에 투자자들이 러시아 금융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달러당 70루블서 49루블로

러시아 증시는 올 들어 신흥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 증시의 RTS지수는 작년 말 790.71에서 15일 현재 1052.33까지 33.09% 올랐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와 유가 급락으로 곤두박질쳤던 루블화 가치도 최근 오름세를 타고 있다. 지난 1월 말 달러당 70루블까지 내려갔던 루블화 가치는 두 달 만에 49루블로 42.9% 급반등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부터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며 “최근 유가 반등과 같은 몇 가지 ‘행운’이 뒤따르면서 상황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경제위기는 국제유가 하락에서 시작됐다. 원유와 천연가스 산업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출의 67%를 차지한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6월 배럴당 115달러를 정점으로 40달러대까지 급강하하며 러시아 경제는 치명상을 입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겹치면서 지난해 9월달까지 달러당 30루블대였던 루블화 가치는 넉달 만에 72루블까지 급락했고, 이 때문에 달러 채무가 많은 러시아 국유기업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됐다. 러시아 정부는 달러를 풀고 금리를 인상(연 10.5%→17%)하는 등 루블화 가치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벼랑 끝에 몰리던 러시아 상황이 올 들어 뚜렷하게 호전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생산량 감소 전망 등으로 40달러대에서 50달러대 후반까지 올랐다. 15일(현지시간) 발표한 3월 산업생산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성장(0.4%)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왔다.

루블화 가치가 급반등했지만 위기상황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비즈니스위크는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수입대체 효과가 나타나 상대적으로 값싼 러시아 생산품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철강업체 세베스탈은 환율 덕에 지난 4분기 6년 만에 최고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 MICEX지수에 포함된 기업 중 78%가 세베스탈처럼 다른 나라 같은 업종의 기업들보다 높은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내수시장 바탕 위기 탈출”

여유가 생기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작년 말 연 17%까지 올렸던 기준금리를 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연 14%까지 떨어뜨렸다. 기준금리는 연내 연 11%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위크는 “2008년 외환위기 때도 러시아는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위기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지난달 20일 “러시아 경제가 최악의 시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의 앤톤 스트루츠네브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러시아 경제는 바닥을 치고 회복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은 여전히 높은 금리와 17%에 달하는 물가상승률, 내수침체가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글로벌 경제 전망에서 러시아의 올해 성장률을 -3.8%로 내다봤다. 6년만의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1.1%)을 전망했다. 미국 GAM인베스트먼트의 폴 맥나마라 이사는 “러시아 경제가 위기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지만 당분간 경기 후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