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탈출·등반·수용소 복귀…포로의 무모한 도전
‘일렁이는 운해를 뚫고 우뚝 솟은, 천상에서나 있을 법한 산이 칙칙한 두 막사 건물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대한 치아 모양을 한 검푸른 색의 깎아지른 암벽, 지평선 위로 두둥실 떠 있는 푸른빛 빙하를 몸에 두른 5200m 높이의 산.(…) 나는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다.’(59~60쪽)

1941년 5월 어느 날, 영국령 케냐 제354 포로수용소. 우기(雨期)가 끝나고 햇살이 비치며 케냐 산이 위용을 드러내는 순간, 전쟁포로인 서른한 살의 이탈리아 청년 펠리체 베누치(사진)에게 포로소를 탈출할 이유가 생겼다. 아무 희망과 즐거움 없이 하루하루 생리학적 삶만 살아가던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산을 정복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미친 포로원정대》는 베누치가 동료인 귀안과 엔초를 꼬드겨 ‘포로원정대’를 결성하고 포로소를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레나나 봉에 오른 뒤 다시 수용소로 돌아오는 모험담을 담았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무솔리니가 동아프리카 식민제국 건설을 꿈꾸면서 정복한 에티오피아의 식민지청에 공무원으로 파견된 베누치는 연합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포로가 됐다. 1945년 종전 후 자유의 몸이 된 그는 1947년 이 책을 썼다.

[책마을] 탈출·등반·수용소 복귀…포로의 무모한 도전
베누치는 꿈이 생기자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고철과 넝마, 잡동사니를 줍고 훔치고 뺏어 아이젠 같은 등산 장비를 만들고, ‘피 같은 담배’를 바꿔가며 식량을 비축했다.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했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맹수의 위협에 시달리고, 식량은 금세 바닥나고, 고도가 높아지며 환각에 시달린다. 원정대는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의 힘과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한다. 세 명은 수용소에 돌아와 탈출에 대한 벌로 28일간의 감방형을 선고받았지만 수용소장은 이들의 스포츠정신을 높이 사 7일간 감방에 살게 했다.

저자가 과거의 기억을 조금은 미화하고 낭만적으로 재구성했을 것임을 감안해도 원정대 세 명은 모두 엉뚱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풍부했음이 분명하다. 만약 혼자였거나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모험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아예 시도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문작가도 아닌 저자가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인 이야기를 탁월한 글솜씨로 들려준다. 이들의 ‘미친 모험’은 재미가 넘치면서도 인간의 꿈과 자유, 나아가 삶을 성찰하게 한다. 산악 논픽션의 고전이 된 이 책의 일독을 대학생들에게 권하는 이유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