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배우 황정민 주연의 영화 ‘부당거래’에서는 경찰(황정민)이 검사(류승범)에게 바지를 벗고 무릎을 꿇는 장면이 나온다. 지난해 경찰 대상 조사에서 이 영화는 ‘경찰과 관련된 최악의 영화 1위’에 뽑혔다.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속옷 차림까진 몰라도 자신 앞에서 무릎 꿇은 경찰을 숱하게 본 사람이 있다. 최근 21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법무법인 KCL에서 새 삶을 시작한 구본진 변호사다.

구 변호사의 이력은 이채롭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삶의 궤적이 묘하게 결합해 있다. 일단 ‘천재 모범생과’다.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사법시험에 붙었다. 저승사자 같은 강단이 있다. 경찰 버스를 동원해 당대를 풍미한 조직폭력배를 잡아들였다. 관례를 따르기 싫어한다. ‘스피치·연극기법’을 법조계 최초로 도입했다. 검찰 방송국도 그의 작품이다. ‘검찰청의 꽃’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최연소 기수 부장검사로 재직하며 정보기술(IT) 수사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오타쿠(특정 일에 몰두하는 사람)’ 기질도 있다. 필체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국내 독보적인 필적학자다. 중국 황하 문명보다 앞선 ‘홍산문화’와 한민족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아마추어 고고학자다. 최근 ‘어린아이 한국인’이라는 저서를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구 변호사는 “끝없이 배우고, 인격적으로 더 성숙하고 싶다. 최고의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검사 시절, 영화 같은 삶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부임했을 때다. 오거리파와 수노아파 간 전쟁이 치열했다. 한쪽에서 다른 쪽 조직원을 회칼로 죽이고, 당한 쪽에서 똑같이 보복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조폭 소탕’ 명령이 위에서 떨어졌다. 구 변호사는 조폭 120여명을 구속했다. “항상 제 방에는 복역하고 난 깡패들이 인사하러 왔어요. 공손하게, 잘 살겠다고. 속된 말로 ‘단골손님’들이죠. (교도소에) 들락날락하니까.” 사실, 우리가 ‘조폭 영화’에서 보는 모든 장면이 구 변호사가 겪은 실제 경험과 같다.

1998년 대구지검 강력부로 옮긴 첫날이다. 부장으로부터 대구 최대 폭력조직 ‘동성로파’ 두목 김모씨를 잡아넣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신(新)동성로파를 창설한 김씨는 단순 이권 개입을 넘어, 터미널 인수 등 ‘경제 건달’을 표방하며 당시 전국을 호령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절대로 구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구(舊)동성로파 두목 박모씨가 청사 안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왔다.

“술자리에서 망신을 많이 당했나 봐요.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제발 김씨를 구속해 달라고 애원하더라고요.” 하지만 구 변호사는 “공정한 게임(수사)이 되려면 당신도 그동안 한 불법 행위를 불어야 한다”고 역으로 압박했다. 결국 박씨는 본인의 폭력 등 범행 사실과 이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을 매수한 사실 등을 모두 털어놨다. 구 변호사는 김씨의 소재를 파악한 뒤 경북지방경찰청에 버스 두 대분의 경찰력을 요청, 주변을 에워싼 뒤 김씨를 체포해 구속했다. 이어 조폭을 신문해 유착된 비리 경찰들을 고구마 줄기처럼 캐내 ‘아침 출근길’에 잡아 구속했다. “뜬금없이 사무실에 찾아와 무릎을 꿇고 ‘검사님, 이번만 살려주시면 정말 바르게 살겠습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경찰들이더라고요. 지레 겁먹고 뭔가 나오면 좀 봐달라고 온 거죠. (웃음)” 대다수 ‘선량한’ 경찰들은 그를 응원했다고 한다.

대검찰청에서 온 러브콜

2003년 2월 대구지검으로 갔을 때다. 옮긴 지 한 달도 안 돼 송광수 검찰총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검 연구관으로 일하라는 명령이었다. 송 총장과 안대희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각각 대구지검장, 차장으로 있을 때 구 변호사를 눈여겨본 것이다.

대검에 와서는 조직에 혁신을 불어넣었다. 공판송무과장 재직 때 일이다. “전국 공판검사 세미나가 있었는데, 3일 동안 모여 밋밋한 사례만 발표하고 끝인 것입니다. 대체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장 없애버렸어요.”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배우인 홍승기 변호사의 소개로 이영란 경희대 연극영화과 교수를 섭외해 스피치, 연극기법을 검사들에게 가르쳤다.

글씨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바르게 살자’

그는 수집광이다. 독립운동가의 명문 1000여점, 친일파 글씨 5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2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 김좌진 장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친일파 이완용 등 저작 인물이 다양하다. 스스로 ‘인간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다. 박은식 선생의 글씨는 2년 동안 공을 들여 입수했다. 박 선생이 남긴 유일한 친필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2009년 ‘필적은 말한다: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을 펴냈다. “독립운동가 글씨 찾기가 아주 어려워요. 중국 등 객지를 오가며 활동하신 분들이잖아요. 갖고 있으면 일제로부터 처벌받고. 아마 독립기념관에서도 저만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연수하던 시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100번도 넘게 방문하며 유물을 탐구했다. 그를 ‘글씨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다름아닌 조폭 등 피의자들의 자필 진술서다. 셀 수 없이 많은 필체를 보면서 인성과 필적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막연히 추정했다. 이 추정은 그만의 독창적인 필적학으로 발전했다.

억울하고 어려운 사람 편에 서겠다

구 변호사는 오는 6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미술전문가를 상대로 ‘저작권 보호’에 대해 강의한다. 글로벌 기업인 SAP로부터도 강연 요청이 들어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여는 법정문화 개선 포럼에도 초대받았다. 왜 이렇게 사방에서 그를 찾는 사람이 많을까. 자신감과 겸손함이 어우러진 독특한 태도 때문이다. 최근 낸 저서 ‘어린아이 한국인’에서도 약력 소개를 전혀 안했다. “내용으로 승부해야죠. 경력을 내세울 필요가 있나요.” 사실 그는 선망의 대상인 검사 중에서도 ‘잘나가는 검사’였다.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어 이런저런 수사가 맹위를 떨치던 2008년, 그는 특수 수사의 정점에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물 유출사건 등 총장 하달 사건을 전담했다. 하지만 올해 홀연히 검찰을 떠났다. 이런저런 불합리한 사정이 있지만 그는 끝내 친정인 검찰에 쓴소리하기를 거부했다. “소송은 어쨌든 이겨야지요. 이기는 변호사, 억울하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검사로) 치열하게 산 만큼 입장을 바꾸면 더 보이는 게 많을 것입니다.” 그는 ‘세월호 사건’으로 옷을 벗은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김수남 대검 차장과 저녁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한국인은 자유분방한 민족…DNA에 ‘키덜트’ 문화 있어”

[人사이드 人터뷰] 구본진 변호사 "강력범 자술서 보다가 필적에 관심…글씨체 보면 사람도 보입니다"
구본진 변호사(사진)는 최근 낸 책 ‘어린아이 한국인’에서 독특한 주장을 편다. 한국인 DNA에 소위 ‘키덜트(kidult·아이 감성을 지닌 어른)’ 문화가 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유년화 현상, ‘네오테니(neoteny)’라고 해석한다. 십수년 동안 아마추어 고고학자, ‘프로’ 필적학자로 활동하며 내린 결론이다. 한국인은 신체, 감정, 지성, 행동 등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아이처럼 변해간다는 주장이다. 매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터무니없는 얘기처럼 들릴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소위 ‘20세기를 뒤흔든 3대 철학자(마르크스·프로이트·니체)’ 중 니체의 명문을 빌려 이 같은 논란을 비켜간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 세 단계로 분류했어요. 낙타는 의무와 타율에 의해 억압된 삶을 살아갑니다. 영특한 고양이과를 대표하는 사자는 본인의 기준을 갖고 자율적으로 살아가지만 늘 긴장 속에서 삽니다. 사실 사자는 떼 지어 공격하지 않으면 안 돼요. 백수의 왕은 무슨…하마, 코뿔소, 기린, 물소, 코끼리보다 훨씬 약해요.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긴장을 극복하면 어린아이가 됩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갖고 억압되지 않는 사람, 니체가 갈구한 ‘초인’이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폐허에서 몇십 년도 안 돼 나라를 일으켜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인들은 니체가 갈구했던 초인입니다.”

구 변호사는 ‘인류 4대 문명’인 중국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홍산문화’와 한국인의 관련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알음알음 입수한 유적을 통해 한민족 고대 문자 ‘산목’이 홍산문화 유적에 새겨진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학문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확신하고 있다. 관련 유물도 여러 점 모았다. 고고학계에서는 이미 그의 발견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