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보이지 않는 손'을 어지럽히는 '보이지 않는 발'
198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는 1971년 ‘규제의 경제 이론’이란 논문에서 ‘포획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정부가 각종 이익집단의 청탁에 휘둘려 적절한 규제를 특정 집단의 구미에 맞게 바꾸거나 없애는 것을 뜻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규제는 시민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이런 포획 현상이 극심해지면 ‘정부 실패’로 연결된다.

원로 경제학자인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에서 경제학을 통해 ‘정치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를 설명한다. 이 교수는 국민이 바라는 정책을 정부와 정치권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핀다. 그는 “정부의 무능과 정경유착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고 넓으며 악질적”이라며 “모두가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 민주주의가 가진 허점이 정치의 실패를, 관료 사회의 고질적 행태가 정부의 실패를 낳는다는 점은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시장의 실패만 말하면서 정부가 좀 더 개입하기를 바라지 말고 정부의 실패와 정치의 실패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먼저 ‘시장의 실패’를 말하며 자본주의 시장의 장단점과 정부의 필요성을 살핀다. 정부도 큰 틀 안에서 시장 안에 있는 참여자이기 때문에 정부를 떼어놓고 시장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경제를 망친다는 주장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이 독점으로 흐르다 붕괴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맞서왔다. 저자는 정부의 역할이 균형점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홉스의 사회계약을 소개한다. 홉스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규칙 아래서 협조적으로 행동한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어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투표 제도의 장단점을 고찰한다. 사람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투표장에 나서지만 투표로 당선된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뜻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지역 예산만 챙기는 ‘쪽지 예산’은 국가와 시장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높다. 그는 “참된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하고 정부가 국민에 봉사하게 하려면 공익 정신을 함양하는 교육과 시민운동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발’이란 개념으로 정경유착의 원인을 파고든다. ‘보이지 않는 발’은 기업이 경쟁을 회피하면서 이익을 얻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부와 정치권에 기대 특혜를 받는 것이므로 기업이 보이지 않게 정부를 포섭하려 든다고 설명한다.

정치와 정부의 실패에 대해 내놓은 대안은 시민운동이다. 저자는 시민들이 시장과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정경유착의 속내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각종 선거에 적극 참여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가와 관료를 솎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시민운동 활성화야말로 시장과 정부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요소”라고 말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