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大法 파기환송만 세 번…대형로펌 10년째 '자존심 싸움'
대법원에서 세 번 파기환송, 등장한 대형 로펌만 여섯 곳, 새로운 대법원 판례 두 개 배출, 재판 진행 10년째….

삼성생명보험이 서울 신문로의 주상복합건물 신축·분양 사업과 관련해 한진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의 이례적인 기록들이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통산 여덟 번째 재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 파기환송률이 5~7%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사건이 세 번 파기환송될 확률은 산술적으로 0.01~0.03%에 불과하다. 삼성생명 측에서 소송을 지휘한 윤용섭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0기·사진)는 “모두 우리에게 유리하게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애환도 많았던 사건”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다소 민망한 공방들을 로펌끼리 주고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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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2002년 부동산 사업 시행사 B사가 서울 종로구에서 주상복합건물 신축·분양 사업을 했다. 삼성생명은 투자자로, 한진중공업은 시공사로 이 사업에 참여했다. 삼성생명은 B사에 530억원을, 수분양자에게 517억여원을 대출해줬다. 이후 B사의 잘못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B사는 파산했다. 삼성생명은 한진중공업에 “약정에 명시된 책임준공 의무를 완수하라”고 요구했다. 책임준공 의무는 ‘시행사가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시공사가 시행권을 넘겨받아 책임지고 완공하는 것’을 말한다. 시행권을 넘겨받으면 B사의 빚을 갚을 의무도 함께 넘어온다. 한진중공업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삼성생명은 2006년 소송을 냈다.

삼성생명은 1심에서 법무법인 바른을 선임했으나 패소했다. 2심에서 대리인을 광장으로 바꿨지만 결과는 같았다. 한진중공업은 줄곧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사건을 맡겼고 1·2심에서 이겼다. 아주(현 대륙아주)도 1·2심에서 한진중공업을 도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생명은 3심에서 율촌을 투입했다. 율촌은 판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2010년 첫 번째 3심 선고에서는 한진중공업에 책임준공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2012년 두 번째 3심 선고에서는 수분양자 대출금 미상환에 대해서도 한진중공업이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올해 초 세 번째 3심 선고에서는 손해배상 지연이자를 율촌 주장대로 계산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진중공업은 2011년 두 번째 파기환송심부터 태평양을 추가 투입했지만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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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 수임계에 한 번 이상 이름을 올린 변호사는 전직 대법관을 포함해 60명 이상이다. 뒤에서 사건을 보조한 변호사까지 합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윤 대표는 “법조인 생활 35년 동안 세 번 파기환송된 사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소송가액이 수백억원 되는 사건은 많지만 대형 로펌이 총출동하는 등 이렇게 판이 크게 벌어지는 사건을 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율촌에서 실무를 총괄한 조장혁 변호사(31기)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상고심은 지금까지 없었던 법리를 새로 정립한 선도적인 판례”라며 “부동산 전문 변호사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금융, 도시정비 전문가와도 함께 일했고 건축학과 출신을 투입해 현장검증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10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로펌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법정에서는 듣기 민망할 정도의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2차 파기환송심부터는 웬만큼 쟁점이 정리된 만큼 합의로 끝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뜻대로 안됐다. 이제는 상당수 쟁점이 정리됐다고 보지만 네 번째 파기환송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조 변호사는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급심에서 끝났어야 할 사건을 오래 끌었다는 점에서 씁쓸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파기환송심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세 번째부터는 좀 당혹스러웠다. 변호사가 이런데 당사자는 얼마나 괴롭겠냐”며 “하급심 강화라는 한국 사법제도의 과제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