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행 '막차' 놓친 공무원 "버티는 수밖에…"
정부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인 C국장은 지난해 말 퇴직 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면 민간 직장 취업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해서다. 그러나 조금 알아본 뒤 바로 포기했다. 자칫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에 버티기로 결론을 내렸다.

○갈 곳 잃은 공무원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경제부처가 밀집한 세종시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퇴직을 고민하는 공무원들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공무원 취업 제한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서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 공직자윤리법은 31일부터 시행됐다.

취업을 제한하는 대상도 기존 민간 기업이나 회계·법무법인에서 시장형 공기업, 사립대학, 종합병원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진 것이다. 발빠른 일부 공무원은 개정 법이 시행되기 전인 지난해 퇴직을 신청하고 민간 기업으로 옮겼다. 하지만 C국장처럼 시기를 놓친 공무원은 후배들의 눈총을 받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2009년부터 정부는 반드시 퇴직해야만 민간기업 등에 대한 재취업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한 공직자윤리법을 시행했다. 재직 당시의 지위를 이용해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다. 기재부, 산업부 등 정부 주요 부처 고위 공직자는 사실상 전 산업 영역이 재직 중 업무와 관련성이 높아 이직 심사를 신청해도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퇴직을 앞둔 한 고위 공무원은 “과거엔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자리를 어느 정도 알아본 뒤에 퇴직 신청을 해 덜 불안했는데 지금은 아무 대책 없이 퇴직 신청부터 해 놓고 기약 없이 서너 달을 기다려야 한다”며 “탈락해도 인사혁신처에서 이유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왜 탈락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민간의 공직 진입도 막아

점점 강화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직 민간 개방 확대’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앞으로 공무원 25%는 외부에서 전문가를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따라 상당수 정부 부처는 내부 주요 보직을 민간에 개방하고 있으며 향후 개방직을 추가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법률을 검토하는 핵심 보직인 통상법무과장직을 민간에 개방했다. 이 자리에는 김앤장 등을 거친 변호사 경력의 S씨가 채용됐다.

국세청도 부쩍 늘어나는 조세 소송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장에 최근 부장판사 출신의 최진수 변호사를 임명했다. 이런 민간 개방직은 2년 계약직이다. 이들 역시 공무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2년 뒤 계약이 해지되면 민간 분야에 재취업하지 못한다. 변호사가 변호사 일을 못하는 것은 물론 개정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사립대학 교수로도 가기 어렵다.

정부 관계자는 “공직자 출신의 민간 재취업을 사실상 막아놓은 지금과 같은 제도가 유지될 경우 공직을 민간에 개방해도 유능한 인재가 지원하지 않는 등 당초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임원기/김재후/강경민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