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과자 오명 벗자"…오리온 허인철의 '착한 포장' 통했다
지난해 9월, 허인철 오리온 총괄부회장(사진)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대학생 3명이 봉지과자 160개를 연결한 ‘과자 뗏목’으로 한강 횡단을 시도한다는 뉴스를 본 직후였다. 과자 포장지 안에 넣는 질소충전재가 너무 많다는 것을 비꼬는 퍼포먼스였다. 허 부회장은 “과대 포장으로 소비자들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며 ‘착한 포장’ 프로젝트를 펼칠 것을 주문했다.

허 부회장의 지시에 대해 회사 내에서는 반발도 있었다. 질소 포장지가 내용물을 보호하는 장점이 있는 데다, 질소 사용량을 줄이면 내용물이 늘어나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란 주장이었다. 제과업계에선 대형마트(이마트) 경영자 출신인 허 부회장이 업계 사정을 모르고 무리수를 둔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허 부회장은 완강했다. “제품의 맛과 품질로 승부하기도 전에 포장 등에서 불신받는다면 어느 순간 업계 전체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였다. 오리온은 그해 11월 23개 제품의 포장을 개선했다. 한 상자에 7개 들어 있던 마켓오 리얼브라우니는 1개를 추가했고, 썬·눈을감자 등은 내용물을 5% 늘렸다. 포카칩, 참붕어빵 등 16종은 35%인 포장 내 빈 공간을 25% 이하로 줄였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우려 속에 출발한 ‘착한 포장’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고 있다. 과대 포장을 개선하고 용량을 늘린 23종의 최근 3개월(12~2월) 매출이 개선 전 3개월(9~11월)보다 15% 증가했다.
"질소과자 오명 벗자"…오리온 허인철의 '착한 포장' 통했다
특히 질소 충전재 함량을 대폭 줄인 스낵류의 매출 증가가 두드러졌다. 썬 매출은 59억원에서 75억원으로 3개월 만에 27% 높아졌다. 대표 제품인 포카칩은 338억원에서 385억원으로, 오!감자는 98억원에서 118억원으로 늘었다. 오리온 관계자는 “외부 활동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스낵 판매가 감소하는 게 게 일반적이지만 착한 포장 프로젝트에 대한 호응 덕분에 소비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오리온은 올 2월부터 ‘착한 포장’ 2차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포장 디자인을 단순화해 잉크 사용량을 연 88t 줄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인쇄도수는 다양한 색상을 사용할 수 있는 7~8도에서 검은색 등 몇 가지 색만 쓸 수 있는 3도 이하로 낮추고, 246종의 잉크 종류를 178종으로 줄였다. 제품을 담는 골판지 상자의 규격도 축소해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기로 했다. 예감, 고래밥 등 22개 제품에 우선 적용해 시장 반응을 살핀 뒤 모든 제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2차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면 매년 10억원의 원가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오리온은 이를 품질을 개선하고 제품 용량을 늘리는 데 투자할 계획이다.

2차 프로젝트 실무를 총괄한 김일주 오리온 마케팅부문장은 “잉크 사용을 덜 하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며 “오리온은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을 강조해 기업 이미지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