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늘과 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덕분에 오랜만에 삼국유사를 다시 찾아보게 됐다. 그가 새정련의 개혁을 얘기하면서 웅녀(熊女) 얘기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지난 29일 대표 취임 50일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단군신화에서 곰이 100일간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으로 변했지 않나. 우리 당도 앞으로 50일을 더 먹어야 제대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왜 하필 곰 얘기를 했을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관련 대목은 정확히 이렇다.

“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그때 인간의 모습을 얻을 것이라(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었다. 삼칠일을 참아내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다. 호랑이는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 인간의 몸을 얻지 못했다.”

자세히 읽어봐도 특별히 이 신화로 전할 메시지는 없어 보인다. 삼국유사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단군의 모계혈통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으로,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끈기의 덕성을 더 높은 가치로 본다는 해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

문 대표는 새정련의 변화가 매운 마늘과 쓴 쑥을 먹는, 즉 신고(辛苦)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누리당은 빠르게 변화하고 우리 당은 정체해 있다” “당원 평균 연령이 58세라니, 늙은 정당”이라고 부연설명한 대목을 보면 그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문 대표는 새정련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지난 50일간 성과가 적었지만 다시 50일만 더 기다려달라는 요청을 웅녀 얘기를 빌려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도였더라도 웅녀 메시지는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 “인간이 아직 되지 못한 정당이었냐”는 비아냥이 벌써 나온다. 굳이 결정적인 실수를 잡으라면 디테일이다. 원래 환웅은 100일간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을 뿐 실제 웅녀가 사람이 된 것은 삼칠일, 즉 21일 만이었다. 물론 흠을 잡아보자는 차원의 얘기다.

두고두고 인용될 만한 메시지를 갈고 다듬어 적재적소에서 터트려도 국민의 마음을 잡기 어렵다. 권력에 대한 열망이 읽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런 레토릭보다는 이념적 정체성을 명백히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길이지 싶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