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김두례 씨가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중견화가 김두례 씨가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현대인은 어쩌면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제 그림은 현대인의 복잡한 일상을 간결한 시처럼 보여줄 수 없을까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관람객이 제 작품을 보고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빠진다면 제 소임은 끝난 것이죠.”

다음달 14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관 롯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중견작가 김두례 씨(59)의 이야기다. 김씨는 자신의 회화세계에 대해 “현대인의 복잡한 일상을 색면 속으로 끌어들여 단조롭게 녹여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로 화가 김영태 화백(89)의 딸인 그는 초창기 인물화, 풍경화, 누드화에 천착하다 1999년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화풍으로 선회했다. 2000년부터 전통 오방색 중심으로 화면을 채웠으나 최근엔 사람과 동물도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점을 깨닫고 화면에 이들을 과감히 등장시켜 구상과 추상의 접점을 찾아 나섰다.

한 화면에서 자연과 인간의 융합을 시도한다는 그는 “관람객이 더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저를 비롯해 주변 인물을 화면에 배치하고 얼굴의 표정을 지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색면 추상화들은 극도로 절제된 수평, 수직 구도 속에 밑에서부터 색이 배어 나오도록 수천 번 칠한 뒤 사람이나 동물을 살짝 얹었다. 구상과 단순한 색면으로 구성된 화면은 사색적이고 시적이며, 또 종교적이기도 하다.

그는 “나이 60줄에 가까워지면서 빨간색, 청색, 노란색 등 밝은 색조들이 화면을 지배한다”고 했다. “우리의 미감을 살려내는 데 색동저고리, 보자기, 황토흙, 민화만큼 좋은 소재가 없더군요. 현대인의 마음속 다양한 이미지를 한국적인 색면 기호로 축조하고 있지요.”

화면을 한복 저고리와 치마처럼 7 대 3의 비율로 분할하고 오방색을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색면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 같은 대가들의 화면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한국적인 정서와 접점으로 치환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스스럼없이 마티스의 작열하는 색채 마술을 보거나 로스코의 깊고 깊은 심연의 색으로 빠져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다 조선 궁궐과 전통 사찰 등을 화면에 담아 한국적인 미감을 살려냈다.

“2013년 가을 서울 서초동 작업실의 구조를 아예 바꿔 자연의 빛을 끌어들여 작업했더니 예전보다 한층 밝은 색감이 나오더군요. 우리 전통의 소리, 냄새를 아우른다는 생각을 하며 매일 15시간 이상 빛과 색감을 연출하는 데 빠져 살아요.”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는 그는 “그림에는 보고 그리는 그림(look and draw)과 생각하고 그리는 그림(think and draw)이 있는데 내 작업은 후자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텔링’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추상과 구상이 한 화면에 응축된 100호 이상 대작 20여점을 내걸었다. (02)726-445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