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인성교육과 인간성 회복이 더 중요한 화두”라고 강조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인성교육과 인간성 회복이 더 중요한 화두”라고 강조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69)은 현안에 대한 답변에 거침이 없었다. 이 총장은 취임 직후 덕성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남녀 차별이 없어진 상황에서 네트워크 구축이 어려운 여대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주 덕성여대에서 만난 이 총장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휴마트(humanity+smart) 인재’ 양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총장은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바뀐 탓에 누구나 아는 것은 다 알고, 모르는 것은 다 모르는 시대가 됐다”며 “디지털 시대일수록 인간성과 인문학의 회복이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인문학 강화를 통해 스마트 기기의 해악을 풀어주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유학 시절 폐차 직전의 중고차 5대를 번갈아 타며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는 이 총장은 “1990년대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길거리 쓰레기통에서 먹을거리를 찾던 루마니아의 도시들이 지금은 프랑스 파리 못지않은 세련된 도시가 됐다”며 “자유시장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월요인터뷰]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디지털 시대일수록 인간성·인문학 갖춘 휴마트 인재 양성 필요"
▷학부에선 건축공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에선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등 이력이 다양합니다.

“제가 66학번인데 그때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때문에 공대 붐이 한창이었습니다. 경기고 3학년 480명 중에서 360명이 서울대 공대를 갔을 정도였죠. 건축공학이 재미있을 것 같아 건축공학과를 선택했는데 첫날부터 미분·적분을 접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거의 안 가고 만화만 그렸습니다. 독일에 유학 가서는 만화를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만화와 연관성이 있는 시각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왜 그렇게 ‘외도’를 많이 했느냐고 묻는데 전 한 번도 외도한 적이 없습니다. 건축공학, 시각디자인, 만화 모두 종이에 없던 걸 그려내는 것이니까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어떻게 그리게 됐습니까.

“독일로 유학을 떠난 1975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외국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외국인이 (국내에) 거의 없는 섬 아닌 섬 같은 나라였습니다.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에 처음 가서 어마어마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로마시대부터 외국과 교류하며 글로벌화된 독일에서 지내면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테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도 벌어야 해서 어린이신문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6년 동안 매주 항공우편으로 원고를 보냈는데 한 번도 ‘펑크’ 낸 적이 없습니다. 술 마실 것 다 마시면서요. 이제까지 신문 연재만 40년 넘게 했는데 마감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습니다. 프로가 뭡니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게 프로입니다. 학생들한테도 좋은 작품을 내는 게 훌륭한 게 아니고 마감을 잘 지키는 게 훌륭한 거라고 가르쳤습니다.”

▷취임사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 검토’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건 제가 화두를 던진 것이지, ‘하겠다’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만 해도 6000명이고 교직원 400명, 동문까지 하면 인원이 얼마나 많은데요. 물어봐서 대세가 그러면 그렇게 가는 거죠. 현재 반응은 반반입니다.”

▷남녀공학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 이유는 무엇인지요.

“여대가 갖고 있던 본연의 목적 자체가 이제는 많이 퇴색했습니다. 여성이 대접을 못 받고 차별받을 때 여성 리더를 키우겠다고 만든 게 여대인데, 지금은 여자가 남자보다 대학도 많이 가고,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봐도 여성 합격자가 더 많은 시대잖아요. 여대의 약점은 동문 선후배 간의 네트워킹이 남녀공학보다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대학들은 기업과 사회 각 분야에 퍼져 있는 선후배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데 여대는 아무래도 그게 힘들죠. 지금은 성을 뛰어넘는 경쟁이 펼쳐지는 시대인데 여대에선 ‘여성 대 여성’의 경쟁만 있으니까 학생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많이 당황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지난해 교육부의 정원 감축 요구를 거절하고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덕성여대는 전체 정원이 6000명인 작은 학교입니다. 단 1%만 정원이 줄어도 우리 같은 학교는 타격이 큽니다.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있더라도 정원을 줄일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거죠.”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정원 축소는 불가피한 흐름입니다.

“정부에선 2023년까지 대학 정원을 16만명 줄이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문제점을 미리 없애는 효과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시장 원리에는 맞지 않습니다. 경쟁해서 잘하는 대학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문을 닫도록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16만명을 줄여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대학 진학률 자체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독일은 대학 등록금이 공짜인데도 진학률이 40%대입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80%대인데 비정상적으로 높은 건 맞고, 대학 정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취임 후 U자형 인재 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넓은 분야를 조금씩 아는 ‘한일자(一)형 인재’가 대세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자기만의 전공이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갖춘 ‘T자형 인재’가 인기죠. 미래 사회는 두 개의 전공에 대해 융합적인 시각을 갖춘 ‘U자형 인재’ 시대가 될 것입니다. 융·복합 전공제를 통해 학생 스스로 적성과 목표에 맞게 수강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뷔페형 커리큘럼’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현재와 같이 학생들에게 수강 과목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도시락형 커리큘럼’으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덕성여대를 ‘21세기형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양성하는 학교로 키울 것입니다.”

▷취임사에서 도입하겠다고 밝힌 이중졸업제는 어떤 내용입니까.

“복수전공은 한 졸업장에 주전공과 부전공을 같이 기재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한 개의 전공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중졸업제는 각각의 전공에 대해 2개의 졸업장을 따로 주기 때문에 기업과 직무에 맞춰 입사 지원이 가능합니다. 대신 이중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1년 정도 학교를 더 다니며 공부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 전공만 갖고는 평생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될 테니 학생들도 미리 준비해야죠.”

▷‘먼나라 이웃나라’의 후속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일단은 총장 일에 ‘올인’해야죠. 오스만제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으로 작업을 하다가 중단한 게 하나 있습니다. 오스만제국은 700년 역사의 대제국인데 로마제국의 영토하고 거의 비슷할 정도였죠. 현안을 해결한 뒤 천천히 준비할 생각입니다.”

▷청년 취업이 심각한데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취업·연애를 포기한 ‘삼포 세대’를 넘어 인간관계와 집까지 포기한 ‘오포 세대’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과거엔 직업다운 직업이 없고 모든 것이 미개척 분야였지만 그 대신 모든 것이 블루오션이었죠. 영화 ‘국제시장’만 봐도 주인공이 맨주먹 하나로 자수성가하지 않습니까. 사자가 먹이를 잡기 위해 작은 토끼에 올인하듯 젊은이도 자신만의 포인트를 잡아 올인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마인드를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원복 총장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이원복 총장은 고등학교 때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를 베껴 어린이신문에 연재하는 일을 하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독일 유학 시절 항공우편으로 신문에 연재한 원고를 묶어 1987년 ‘먼나라 이웃나라’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지난해까지 1500여만 권이 팔렸다. 1999년 객원교수로 머물렀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장충체육관만한 주류판매점을 가득 채운 전 세계 와인의 매력을 접한 뒤 집에 작은 ‘와인 바’를 만들 정도로 와인에 푹 빠진 애호가다. 와인 관련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1946년 대전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건축공학과 수료 △ 독일 뮌스터 응용대 시각디자인학과 석사 △독일 뮌스터대 서양미술사 전공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한국애니메이션만화학회 회장 △덕성여대 예술대학 학장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나눔대사 △덕성여대 총장

정리=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