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둘러싸고 법조계에서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집행부가 바뀐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가 지난 19일 ‘전관예우’ 근절 차원에서 차한성 전 대법관에게 변호사 개업 신고를 철회하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한변협은 결국 대형 법무법인(로펌)의 공익재단에서 활동하겠다는 차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했다. 징계 등 결격사유가 없는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를 접수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맞짱 토론]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막아야 하나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진영은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개업 대신 공익적 봉사활동을 택해 후배 법관들에게 모범을 보여 달라고 주장한다. 수천만원의 도장값을 받는 것이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전관들의 변호사 개업은 외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반면 대한변협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진영은 변호사단체가 법적 근거도 없이 신고를 접수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거나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이미 퇴임한 다수의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해 활동하고 있는 만큼 평등권에 반한다는 의견도 있다. 평생법관제가 정착된 뒤에 법을 개정해 해결할 사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전관예우 근절을 위한 다양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찬성 / “퇴임 대법관 거액 수임료 받아, 전관예우 의혹…사법불신 불러”

公益 활동으로 후배 법관의 모범돼야


[맞짱 토론]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막아야 하나
대법관은 왜 개업하지 말아야 하는가. 간단하다. 심각한 사법 불신을 초래하고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관들이 그 위상에 맞는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퇴임 후 돈벌이에 나선 전력 때문이다. 법무법인 등으로 진출한 이들의 수임료 규모가 천문학적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마다 국민들은 한편으로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 분개했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 로펌으로 간 대법관의 대다수가 많은 돈을 챙겼을 것이라고 국민들은 믿는다.

대법관 출신들이 한순간에 노다지를 캐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한 푼 두 푼 열심히 벌어서 저축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대법관들이 퇴임한 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길로 나서고, 그런 전통이 10년만 지속되었더라도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부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법관이 퇴임 후 고액 연봉을 보장받고 로펌 변호사로 자리를 잡고 앉으면, 로펌은 그 변호사의 이름을 팔아 상고심 사건을 거의 싹쓸이하고 고액의 수임료를 챙긴다. 하급심에서 진 쪽은 로펌을 찾아가 사건을 맡겨 재판을 뒤집기를 바라고, 이긴 쪽은 이긴 쪽대로 불안해서 전직 대법관을 찾기 때문에 사건은 줄을 잇고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 과정에서 로펌과 대법관은 소위 떼돈을 번다.

위와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대법관이 퇴임 후 개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대법관이 먼저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이면 중·하위직 법관들도 개업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법관을 평생 직업으로 알고 정년까지 근무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는 외국에도 거의 없다. 미국 판사는 종신직으로 운영돼 개업 자체가 불가능하고, 영국이나 홍콩은 일단 법관으로 임명되면 다시 변호사로 개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일본도 명문화된 규정은 없으나 퇴직 대법관은 공증에 한해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맞짱 토론]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막아야 하나
대법관을 지낸 뒤 변호사 개업을 하는 소위 ‘황제 변호사’ 활동은 사법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국민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 많은 병폐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병폐는 다시 연쇄적 반응을 일으키며 법률시장 곳곳을 오염시켰다. 이제는 폐습을 척결할 때다.

사실 최근에는 퇴임 대법관들이 교수, 법원 조정위원, 무료 상담 등을 맡는 경우가 늘고 있어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2004년 퇴임 후 동아대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은 2010년 퇴임 후 서강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택했고, 또 박준서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배기원 전 대법관은 오래전부터 구청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상 양식 있는 대법관들은 앞으로 변호사로 개업하는 대신 공익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퇴직 후 변호사 개업 여부를 대법관 스스로 선택하도록 맡겨둘 수만은 없다. 현재는 변호사법 제31조에 퇴임한 법관이나 검사는 자신이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이 처리하는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돼 있고, 대법원은 최종심으로서 전국의 모든 소송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관 출신은 1년 동안 수임이 사실상 제한될 뿐이다. 이 때문에 차제에 대법관은 퇴임 후 로펌 등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는 관행을 만들고 나아가서 이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대법관을 지낸 분들이 직업의 자유 운운하며 돈벌이에 나서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모쪼록 대법관까지 지낸 어르신들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대법관이 퇴임 후 개업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 / “법률 근거 없는 ‘개업 봉쇄’ 안돼…평생법관制 정착이 선결 과제”

법원장·검사장은 규제 안받아…균형 상실


[맞짱 토론]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막아야 하나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둘러싸고 시론이 분분하다. 변호사 등록 및 개업신고 업무를 총괄하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전관예우를 가장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한 전직 대법관의 개업신고를 반려했다. 법조계에서 전관예우를 둘러싸고 많은 비판이 있던 차에 이런 대한변협의 태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필자 또한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전관예우가 법조계에 횡행한다고 믿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억울해 한다면 법조계 전체가 이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전관예우를 없애려면 우선 평생법관제가 정착돼야 하고 그 전제로 사법연수원을 나와 약관에 법관직을 맡는 것보다 변호사로서 사회 경험을 쌓은 다음 40대 이후에 법관직에 올라 별다른 사유가 없으면 정년까지 근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대법관 문제도 작금 사법부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부 대법관이 너무 젊은 나이에 그 지위에 오르고 6년의 임기를 채운 뒤 젊은 나이에 퇴임한다는 데서 비롯된 면이 있다. 그러지 않아도 워낙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건강이 좋아져 60대에 퇴임하더라도 그냥 쉴 수가 없는 데서 변호사 개업을 막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대한변협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전관예우가 의심된다는 것만으로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겠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전직 대법관들은 기록 한번 검토하지 않고 상고이유서에 도장 하나 찍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는다는 이른바 도장값 운운하면서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이를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삼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모 전직 대법관은 시력이 좋지 않음에도 모든 문서를 손수 작성하고 후배 변호사들과 토론까지 한다. 대한변협이 도장값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것은 전직 대법관 전체에 대한 모욕이고, 법률가 단체인 대한변협으로서 그런 말을 하려면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한 뒤에 해야지 소문을 듣고 모든 대법관이 그러한 양 불쑥 내뱉으면 법조계 스스로 국민들에게 법조계 전체를 불신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승자박이 된다.
[맞짱 토론]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막아야 하나
그리고 대한변협의 태도는 균형성마저 상실했다. 전직 대법관이 몇 천만원을 받는 것은 안 되고 법원장이나 검사장 이상이 나와 전관예우를 빌미 삼아 몇 천만원을 받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작은 전관예우는 괜찮고 큰 전관예우만 문제가 된다는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한변협의 전관예우 근절에 대한 충정은 이해하나 그 충정이 논리성을 갖추고 합리적일 때 공감을 받는 것이다. 대한변협은 국민만 설득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 당사자도 합리적인 근거로 설득시켜야 한다.

대한변협이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으려고 이렇게 일부 시민단체처럼 국민정서법을 동원하면 안 된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법률가 단체마저도 포퓰리즘에 물든 단체가 되는 것이 서글프다.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이 옳지 않다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법률제정을 요청하고 이에 따라 막아야지 그것이 옳다고 믿는 한 사람의 말로써 행해지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대한 법익 침해는 법률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 법조인 단체인 대한변협이 철저한 법치주의에 서서 활동할 때 2만여명에 달하는 구성원의 지지를 받을 뿐 아니라 국민의 편에 서는 것이 된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