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오 다케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는 지난 2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 “협조 융자를 하는 데 큰 보완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대(敵對)관계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전제를 달았다. AIIB가 환경에 관한 배려, 입찰에 대한 투명성, 엄격한 융자 기준 등 글로벌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AIIB 출범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미국과 중국 간 파워 게임이 중국의 ‘판정승’으로 끝난 직후였다. 미국은 AIIB를 ‘반대’하다 ‘협력’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런 상황에서 ADB 총재의 발언은 견제구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판 커진 아시아 인프라시장…한국엔 기회
아시아 인프라 시장을 놓고 중국이 주도하는 AIIB와 일본 미국이 주도하는 ADB가 치열한 쟁탈전을 예고하고 있다. 1966년 ADB가 출범한 지 반세기 만에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 정부도 지난 26일 AIIB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일본은 AIIB에 참여하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금융기구 출범은 역사의 변곡점을 뜻한다. 5대 국제금융기구 중 가장 마지막인 1991년 출범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냉전 종식의 산물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시행으로 소련 붕괴가 예고되자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옛 소련과 동유럽의 개혁 노력에 자금을 지원할 EBRD 창설을 제안했다. 세계은행 계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생겨난 지 46년 만의 일이었다.

중국의 도전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강력하다. 국제금융기구는 지역 경제의 핏줄 역할을 한다.

EBRD는 여전히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 등에 강력한 자금줄이다. 다른 국제금융기구와 달리 정부에 차관을 제공하는 대신 유럽 민간기업에 대출자금을 지원해준다. 지난해에도 377건 88억유로를 지원했다. 매년 90억유로(약 10조8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풀면서 유럽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ADB도 매년 80억~100억달러의 원조를 하고 있다. 2013년 85억달러를 아시아 국가에 지원했다.

AIIB는 ADB(1629억달러) 못지않은 1000억달러의 수권 자본금으로 출범한다. EBRD(300억유로)의 3배 수준에 이른다. AIIB는 내년부터 수백억달러 이상의 채권을 발행해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건설에 자금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내년 AIIB와 ADB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아시아 인프라 시장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ADB는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시설 투자수요가 2020년까지 매년 7300억달러(약 806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 26일 AIIB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배경이기도 하다.

ADB뿐 아니라 AIIB의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해 건설 통신 등 인프라에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ADB와 AIIB의 경쟁 구도에서 벌어지는 입찰에서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AIIB는 협정문에서 ADB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ADB는 투자 의사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중국이 주도하는 AIIB는 ADB와 달리 투자 의사결정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시아 인프라 개발 수요에 비해 자금 공급이 모자라 당장 ADB와 AIIB의 경쟁이 수면 위로 불거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배경이 있어 ADB와 AIIB의 경쟁이 본격화될수록 한국 기업에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