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념보다 실용…'싱가포르 國父' 리콴유 잠들다
나라의 운명은 국가 지도자가 좌우한다. 그건 역사가 입증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백성이 ‘중우(衆愚)정치’에 빠지는 것도 궁극적으론 지도자의 리더십이 부족한 탓이다. 대륙의 변방민족이 몽골제국을 건설한 것은 칭기즈칸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지도자에게 솔선의 리더십, 비전의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 용기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사를 통해 보여줬다. 세종대왕은 진정한 애민(愛民)이 군주의 큰 덕목임을 잘 말해준다. 세종대왕 시대의 조선이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르네상스를 구가한 것은 애민의 리더십이 활짝 꽃피운 덕이다. 같은 대륙 국가이면서도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해 국력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남미국가들은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다.

싱가포르는 한때 지구상에서 더없이 미약한 존재였다.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할 당시의 싱가포르는 단지 ‘초라한 섬’ 정도였다. 사람들은 정치가 불안하고 가난한 이 섬이 언제라도 주변국에 흡수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만에 그 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훌쩍 넘기며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우뚝 섰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물류와 금융, 비즈니스의 허브로 도약했다.

‘싱가포르 기적’의 주인공은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李光耀)다.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하기까지 31년간 싱가포르를 이끈 그는 법치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아시아적 발전모델’로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경제 분야에선 철저히 자유를 부여했다.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고, 다국적 기업의 민원도 ‘세계 최고 속도’로 처리했다.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했고, 양도소득세 상속세는 아예 부과하지 않았다. 현재 1만여개 외국 기업과 세계적 은행 200여곳이 싱가포르에 둥지를 튼 것은 이런 개방 정신이 활짝 꽃을 피운 결과다.

“싱가포르가 잘못되면 무덤에서라도 일어나겠다”는 국정연설(1988년)에선 ‘굳건한 조국 건설’을 향한 그의 애국이, (사후 우상화를 경계해)“내가 죽거든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 버리라”는 유언에선 그의 철저한 실용정신이 배어난다.

리콴유 리더십의 또 다른 키워드는 ‘청렴’이다. 그는 부패조사국을 만들어 공직자 부정을 엄정히 다스렸다. ‘자유는 질서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길거리에 버리는 쓰레기에도 과할 정도의 벌금을 부과했다. 싱가포르가 잘사는 나라지만 ‘숨막히는 감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결사·집회의 자유 등을 지나치게 통제한 독재자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싱가포르가 그의 리더십 덕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아시아의 거인’ 리 전 총리가 지난 23일 92세로 타계했다. 삼가 명복을 빈다. 4, 5면에서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십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