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1969년 서울대 응용과학연구소를 만들 때부터 ‘한국형 싱크탱크’를 꿈꿨다. 하지만 사업에 성공하는 게 먼저였다. 건축설계사로 일하던 그는 1970년 한국 부엌의 아궁이를 바꿔 주부들을 편하게 해주겠다며 회사를 차렸다. 23.14㎡(7평)짜리 비닐하우스에서 만든 한샘산업사였다.

아파트 보급으로 한샘의 주방가구는 인기를 끌었다. 작은 목공소였지만 그는 중동, 미국에 수출도 했다. 40대였던 1980년대에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빌트인 방식의 주방가구에도 도전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야만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기반으로 1983년 ‘수출 500만달러’를 달성했다.

50대인 1990년대엔 “생활문화를 개선하겠다”며 종합가구회사로 변신했다. 성공이 눈에 보이자 그는 1994년 당시 전무였던 최양하 회장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사회의 미래를 위해 기업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 나섰다. ‘한국형 싱크탱크’ 설립이 그의 머릿속에 구체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기업인’으로 불리는 그는 2006년 이례적으로 대학 강단에 섰다. 성균관대 최고경영자(CEO) 초빙강좌에 강사로 나가 ‘미래의 주인공’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 이 자리에서 그는 “다가올 미래 사회는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 일방적 지배가 아닌 두 문명의 장점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융합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강연은 그가 처음으로 싱크탱크 구상을 밝힌 것이란 평가다.

이후 그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을 다니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언젠가 한국형 브루킹스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선 것. 2012년 조 회장은 ‘한샘드뷰 연구재단’을 설립했다. 본격적인 싱크탱크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26일 자신의 재산 절반을 이 재단에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30세에 스스로 다짐했던 약속을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