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에 숨겨진 두 가지 이야기
1990년대 뉴욕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미국 최악의 범죄 소굴이었다. 여행객들에게는 뉴욕에서 지하철이 가장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1994년 뉴욕시장에 선출된 루돌프 줄리아니는 범죄를 줄이기 위해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했다. 길거리에 방치된 자동차의 유리창이 깨진 상태라면 범죄의 가속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범죄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뉴욕시 당국은 먼저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더 이상의 낙서를 방지하고, 기존 낙서도 청소원을 통해 지워 나갔다. 언론에서는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줄리아니 시장은 굴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효과는 엄청났다. 거짓말처럼 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2년 뒤에는 중범죄가 50%까지 감소했다. 지하철의 낙서를 지운 사소한 변화에 집중한 뉴욕. 별것 아닌 변화가 사람들에게 깨끗한 범죄 없는 도시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깨진 유리창 이론’의 주장이다.

깨진 유리창이 범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깨진 유리창 가설’인 반면, 깨진 유리창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소년이 상점 창문을 깨뜨렸다. 마을 사람들은 불운을 당한 상점 주인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깨진 창문이 유리장수에게는 일거리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유리창을 판 유리장수는 그 돈으로 빵을 샀다. 제빵업자는 빵을 판 돈으로 신발을 수선했고, 결국 신발장수에게도 일감이 생겼다. 사람들은 이제 유리창을 깬 소년을 마을 사람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준 은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내용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레드릭 바스티아의 저서 ‘법’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범죄를 장려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뭔가 망가뜨리면 그걸 복구하기 위한 다양한 경제활동이 벌어진다. 그러니 망가뜨려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할 것이다.

정말 유리창을 깨면 경제가 좋아질까. 바스티아는 동네 사람들의 생각이 얼핏 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결국 틀렸다고 말한다. “상점 주인은 유리가 깨지지 않았다면 유리창을 살 돈으로 바로 빵이나 신발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유리창도 온전하면서 빵이나 신발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창 수리 비용 때문에 빵이나 신발 살 돈이 없어졌다. 빵장수나 신발장수는 과거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유리장수만 이득을 봤을 뿐 나머지 마을 사람 전체로는 더 가난해졌다.”

유리창을 깨는 것은 마을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장수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일이다. 바스티아가 ‘깨진 유리창 가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유리장수의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손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시의 범죄 감소에 관심을 가졌던 경제학자가 있다. ‘괴짜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이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깨진 유리창 이론’을 검증해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뉴욕의 범죄율 감소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한 것보다는 1973년 미국에서 벌어진 ‘낙태 합법화’ 여파가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낙태를 하는 대부분 여성은 가난하고 미혼이며, 비싼 불법 시술을 받기에는 돈이 없거나 조건이 여의치 않은 10대 청소년이었다. 빈곤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이 아이를 낳았다면 그 자녀는 20대가 되는 1990년대에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낙태 합법화를 통해 불우한 청소년들이 낙태를 할 수 있게 돼 청소년 범죄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 레빗의 설명이다. 레빗의 설명은 마치 ‘깨진 유리창’이 전혀 다른 경제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것처럼 낙태 합법화가 전혀 상관 없는 미래의 범죄율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의 성패에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눈에 보이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많다. 대부분 기업이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면 검증도 하지 않고 벤치마킹하려고 애를 쓴다. 제대로 된 성공 요인을 찾지 않는 이런 벤치마킹은 성공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깨진 유리창 가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까지 고려해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계평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