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장 무시한 간편결제 밀어붙이기
“페이팔을 따라하는 게 핀테크(금융+기술)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방식으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면 카드 부정 사용은 분명히 늘어날 겁니다.”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간편결제 서비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작년 이맘때 박근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이 나온 뒤 온라인 간편결제 확대를 추진해 왔다. 외국인들이 불편 없이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카드사들이 간편결제 서비스 출시를 망설이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24일 신용카드사 임원들을 소집했다. 간편결제 서비스 출시일을 확정해 줄 것을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액티브X를 없애고, 아이디와 패스워드 입력만으로 간편하게 결제되는 환경을 만들라는 요구였다.

카드사들은 “보안에 아직 자신이 없다” “미국과 한국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등의 이유로 서비스 출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당국은 완강했다.

결국 카드사들은 이달 중으로 액티브X를 일제히 없애기로 했다. 모든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적용 가능한 범용 보안프로그램(exe)으로 액티브X를 대체하기로 했다. 이어 다음달에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입력하면 결제가 가능한 간편결제 서비스도 출시한다. 삼성·신한·현대·롯데·하나카드가 준비 중이다.

새롭게 출시되는 간편결제 서비스는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게 선택사항이다. 카드업계나 보안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게 이 대목이다. 벌써 중국 해커들이 국내 간편결제 출시만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번지고 있다.

온라인 결제 편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보안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새로운 서비스 자체가 나올 수 없다는 당국의 생각도 이해한다. 하지만 보안과 편의성은 양날의 칼이다. 업계에선 간편결제 서비스 추진 과정이야말로 관치 금융의 전형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핀테크의 핵심이 보안이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시장의 목소리를 신중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