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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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 최초 입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이 국회 통과안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

김 전 위원장은 10일 오전 서강대 다산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영란법’ 논란과 관련해 “법 적용 대상이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등 민간 분야까지 확대된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헌법소원을 내는 등 위헌 논란을 비롯해 법이 시행될 경우 각종 맹점을 지적하는 비판론 득세에 제동을 건 셈이다. 벌써부터 개정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비판 여론이 계속될 경우 김영란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전 위원장은 법안을 일단 시행한 뒤 개선을 추진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기자회견에서 “통과된 법안이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 “원안(국민권익위원장 재직 시절 입법예고안)에서 일부 후퇴한 점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법 시행도 해보기 전에 개정·수정 이야기를 꺼내는 건 너무 성급하다”고 논란 확대에 선을 그었다.

다만 △부정청탁 금지 △금품 등 수수금지 △이해충돌 방지의 3가지 분야로 이뤄진 원안에서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빠지고 일부만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전 위원장은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넣은 것은 고위 공직자의 사익 추구 금지가 목적으로, (김영란법의) 취지인 반(反)부패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회 통과안이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부분이나 가족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부분, 부정청탁 개념이 광범위하다며 15개 유형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축소한 부분에 대해서도 “원안에서 후퇴한 내용”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김영란법 적용 대상을 공직사회에 집중한 원안과 달리 민간 분야로 확대시킨 데는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

그는 “지금도 공직사회 반부패 문제부터 새롭게 개혁하고, 2차적으로 기업 금융 언론 사회단체 등을 포함하는 민간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번에 국회가 민간 분야 일부를 포함시킨 것을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장차 확대시켜 나가야 할 부분이 일찍 시행됐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공공성이 강한 민간 분야에 확대를 시도한 것이어서 평등권 침해는 아니라고 본다. 국민의 약 70%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까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는 언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잉입법이나 비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 마련을 제안했다.

법안이 최초 제안됐을 때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고 회고한 김 전 위원장은 앞으로 최종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가장 큰 저항 요인으로 ‘관행에 익숙해져 있던 스스로’를 꼽았다.

김 전 위원장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일만 생기면 청탁전화 한 통, 돈봉투 한 장을 챙기던 우리들 자신의 부패한 습관과 싸워야 한다”면서 “이 법안의 가장 큰 적은 우리들 자신”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법은 ‘공직자에게 청탁전화 하거나 돈봉투 가져다주면 그 사람도 처벌받으니 이제 그런 생각 버리세요’ 하는 법이다. 공직자에게는 거절과 사양의 명분이 되는 법”이라며 “그러므로 이 법은 처벌법이 아니라 보호법이라 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법에 허점이 많다며 시행을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선 “단순히 형사법적 처벌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오래된 부패 관행과 습관, 문화를 바꾸는 근본 목적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반론을 폈다. “법을 일단 시행하면서 부패 문화를 바꿔보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는 점이 있으면 보다 강화된 조치를 추가하는 게 순리”라고도 했다.

그는 또 “이 법이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소회를 전하며 “(김영란법 국회 통과엔) 국민과 언론의 역할이 컸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아직 반쪽 법안만 통과된 상태이므로 원안대로 전체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수많은 토론과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이 필요하다”며 “저도 법안의 최종 확정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입안자인 제가 나서서 발언하면 자칫 여론을 호도할 우려가 있어 공개적 언급은 삼가고자 한다. 많은 분들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진행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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