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리포트] CEO 승계후보 간 '무한경쟁'…끊임없는 검증으로 리더 키워낸다
2011년 8월24일 애플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비상상황이었다. 애플의 아이콘 그 자체였던 잡스는 췌장암에 걸려 2009년에 이어 2011년에도 한동안 회사를 떠나 있어야 했다. 애플 경영권 승계가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던 시점에서 이사회가 새로운 CEO로 선택한 인물은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였다.

잡스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쿡이 CEO로 오르자 애플 주가는 곧바로 급락하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쿡은 그러나 취임 후 3년 반 만에 애플을 시가총액 7000억달러를 넘는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애플의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투자자들도 “쿡이 잡스를 넘어섰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포브스는 “당시 이사회는 애플이 잡스의 ‘1인 체제’를 극복하려면 13년간 COO를 맡아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한 쿡의 경영 능력과 조직 관리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며 CEO 승계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분석했다.

‘포스트 버핏’ 치열한 내부 경쟁·검증

직원 수 25만명. 자회사 80곳을 포함해 9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투자회사로 시가총액 기준 미국 4위 기업. 자회사를 분사하면 S&P500대 기업에 8곳을 포진시킬 수 있는 거대 기업집단. 투자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다.

최근 버핏은 경영 50주년을 맞아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뒤를 이을 적임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버핏은 올해 84세다. 2인자인 찰리 멍거 부회장은 91세다. CEO 공백이라는 리스크에 처할 수 있다. 버핏은 편지에서 “내가 죽거나 물러나면 후임자가 즉시 CEO를 맡을 것”이라고 투자자를 안심시켰다.

멍거 부회장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프로그램을 통해 ‘포스트 버핏’ 후보로 아지트 자인 보험부문 대표(63)와 그레그 아벨 에너지부문 대표(52)가 압축됐다고 힌트를 줬다. 인도 출신인 자인은 1986년 버핏이 발탁한 인물로 지난해 재보험 사업부문을 회사의 ‘캐시머신’으로 자리 잡도록 키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인이 30년간 버핏과 호흡을 맞추면서 권한의 하부 위임과 관료주의 배제라는 벅셔의 기업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반면 아벨은 자인보다 한참 늦은 2000년 벅셔에 합류했지만 인수합병(M&A)을 통해 에너지 사업부문을 순이익 200억달러(지난해 기준)의 미국 최대 전력공급회사로 키우며 카리스마 넘치는 CEO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경영권 승계 ‘모범답안’ GE도 도전에 직면

경영전문매체인 포브스는 미국 내에서 가장 완벽한 CEO 승계 프로그램을 갖춘 회사로 GE, P&G, IBM을 꼽았다. 특히 GE는 CEO 후보군을 자체 양성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2001년 잭 웰치 회장의 뒤를 이어 GE의 CEO로 오른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7년간 검증기간을 거쳤다.

웰치 전 회장은 자신이 퇴임하기 7년 전인 1994년 23명의 후보자를 선정해 매년 두 차례 평가를 통해 3명을 추려냈다. 1998년에는 최종 후보자가 된 이멜트, 제임스 맥나니, 로버트 나델리 등 3명에게 2년간 각 사업부의 CEO를 맡겨 능력을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이멜트를 CEO로 선정했으며 경쟁에서 탈락한 두 사람은 3M과 홈디포 CEO로 영입됐다.

하지만 이렇게 선발된 이멜트 회장도 내년에 교체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재임 15년 동안 주가가 오히려 35% 하락하는 등 부진한 실적 탓이다. 이 기간 S&P500지수는 두 배로 올랐다. 바클레이즈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부분 투자자들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제프 본스타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러나 GE가 강력한 ‘벤치 멤버(후보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내부승계라는 원칙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현재 후보군 역시 이멜트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인물들로 GE의 부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지적이다. GE 주주인 헌팅턴 애셋 어드바이저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진용을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며 내부 후보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CEO 양성소’ JP모간도 인재 유출 딜레마

금융회사 가운데 CEO를 배출하는 ‘인재 사관학교’로 JP모간체이스가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최근 경영위기에 직면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가 지난달 피터 샌즈 CEO를 대신할 인물로 빌 윈터스 전 JP모간 투자은행부문 대표를 선임한 데 이어 스페인 은행인 산탄데르도 미국 법인 대표에 JP모간 소비자금융 대표였던 스콧 파웰을 데려갔다. 제이미 다이먼의 ‘이너서클’ 멤버였던 찰스 샤프 소매금융 대표는 신용카드 회사 비자로, 프랭크 비지그나노 COO는 카드 단말기 업체인 퍼스트 데이타의 CEO로 자리를 옮겼다. 마이클 카바나 투자은행 및 기업 담당 공동 CEO는 사모펀드 칼라일의 COO로 발탁되는 등 JP모간 출신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두 2005년 다이먼 회장 취임 이후 사업부별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서 뛰어난 인재들이 걸러진 결과다. 문제는 화려한 겉과 달리 59세인 다이먼 회장의 ‘출구전략’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능한 차기 CEO를 계속 양성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인재들의 외부 유출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론 대니얼 맥킨지 대표는 WSJ에 “최고의 글로벌 은행을 만들기 위해 인재를 잃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다이먼 회장이 후계 구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월트 디즈니는 지난달 밥 아이거 CEO 후임에 토머스 스택스 디즈니 파크&리조트 총괄책임자를 지명했다. 디즈니가 아이거의 임기가 만료되는 2018년 6월까지 3년 넘게 남았는데도 경영권 승계절차를 마무리 지은 것. 노엘 티치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영권 승계는 단순히 여러 후보 중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리더를 양성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