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구광모 LG 상무와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 총괄(CCO) 부사장,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장
/왼쪽부터 구광모 LG 상무와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 총괄(CCO) 부사장,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장
국내 재계에 '증손자 시대'가 문을 열었다. 1950년 6·25 전쟁 후 등장한 한국 대표 기업들이 창립 60주년을 넘기면서 오너 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올해 '별'을 단 LG가(家) 4세부터 지분 늘리기에 뛰어든 GS그룹 창업주 증손자까지 올해 재계의 주요 경영키워드 중 하나는 '기지개를 켠 4세들'이 될 전망이다.

가장 눈에 띄는 4세는 올해 임원으로 승진한 구광모 LG 상무다. 구 상무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증손자다.

구 상무는 올해 정기임원 인사에서 부장 승진 2년 만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과거 구인회 창업주에서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까지 장자들이 LG그룹 경영권을 승계해 온 것으로 미뤄볼 때 구 상무가 후계를 이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임원 승진을 통해 구 상무의 경영행보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1978년생으로 2006년 LG전자 재경부 대리로 입사한 후 8년 만에 별을 달았다. 2009∼2012년 미국 뉴저지 법인에서 금융과 회계업무를 담당한 후 귀국했다. 이후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 선행상품기획팀과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 창원사업장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지난 해 4월부터는 LG시너지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범 LG가인 GS그룹도 4세의 행보가 부각되고 있는 그룹 중 한 곳이다. 허준홍 GS칼텍스 상무, 허서홍 GS에너지 가스 프로젝트 추진 부문장, 허원홍 GS건설 상무, 허윤홍 GS건설 상무 등 GS가 4세들이 지분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식 담보대출로 자금을 마련해 GS 지주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면서 GS의 4세 승계작업에 신호탄이 울렸다.

GS가 4세들 중 최근 가장 많은 지분을 끌어올린 인물은 허서홍 부문장이다. 허 부문장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지난 해 10월부터 이달 3일까지 20차례에 걸쳐 GS 주식 23만4000주를 매입했다. 이로 인해 GS 지분율은 0.64%에서 0.89%로 0.25%포인트 늘어났다. 허 부문장이 5개월여간 사들인 주식 규모만 전날 종가 기준으로 102억원에 달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GS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4세들이 본격적으로 지분 매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허 부문장이 지분 높이기에 집중하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계열사를 중심으로 4세 체제가 본격화됐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 사장 등이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 두산그룹과 거리를 두고 있던 박용만 회장의 장남 서원 씨가 최근 그룹 광고 계열사인 오리콤에 합류하면서 4세 경영에 불을 붙였다. 그는 지난 해 10월 오리콤의 크리에이티브 총괄(CCO) 부사장으로 임명된 후 회사의 광고 캠페인을 총괄하고 있다.

이외에 코오롱그룹 4세인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장은 최근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계열사를 돌며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증손자인 이 부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후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했다. 경북 구미공장에서 1년간 근무한 뒤 인천 송도 소재의 코오롱글로벌로 이직하고, 지난 해 4월 부장으로 승진했다.

재계 전문가들은 그룹사의 승계작업이 가속화하면서 4세들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재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4세들이 내부 경쟁을 치른 후 경영 승계를 받을 것"이라며 "선대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 받기 위해 형제간 또는 사촌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지분 확대와 같은 의미 있는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