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경영대는 4일 KAIST 서울캠퍼스 수펙스경영관에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이름을 딴 ‘이규성 강의실’을 개설했다. 김동석 KAIST 경영대학장(오른쪽 두 번째부터), 이 전 장관과 부인 정수자 씨 등 참석자들이 개관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KAIST 경영대는 4일 KAIST 서울캠퍼스 수펙스경영관에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이름을 딴 ‘이규성 강의실’을 개설했다. 김동석 KAIST 경영대학장(오른쪽 두 번째부터), 이 전 장관과 부인 정수자 씨 등 참석자들이 개관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공무원들은 10쪽 분량을 1쪽으로 축약해 보고하는 게 일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10쪽을 100쪽 분량으로 늘려서 무슨 얘기인지 손에 쥐어 줘야 해요.”

4일 서울 홍릉 KAIST 경영대(학장 김동석 교수)에서 열린 ‘이규성 강의실’ 명명 기념행사에서 이규성 전 재무부 장관(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렇게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과학’ 일색이던 KAIST 교육과정에 금융을 처음 도입한 이 전 장관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강의실이 수펙스경영관 401호에 만들어졌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안주하는 것만큼 퇴보하는 것은 없다. 좋은 교수, 학생을 만나게 해준 KAIST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1990년 3월 재무장관에서 퇴임한 이 전 장관은 이듬해부터 고향인 충남 논산의 건양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1994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면서 금융 개방과 자율화가 필연적으로 따를 것을 직감하고 금융공학 MBA 과정을 설치할 것을 KAIST에 제의했다. 그는 “금융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KAIST에 금융전문대학원을 만들도록 한 게 제 인생의 가장 큰 성취”라고 말했다.

그의 제안으로 1996년 3월 세워진 테크노경영대학원에 금융공학 MBA 과정이 설치됐고, 그는 금융공학 연구센터 초대 센터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인재양성 목표는 ‘티(T)’형 또는 ‘파이(π)’형 금융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 수학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 기존 KAIST가 강한 학문에 재무이론과 위험관리를 가미한 것이 T, 여기에 금융경영기법을 추가하는 게 π였다.

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으며 아무리 더워도 웃옷을 벗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했다. 1995년 산업공학과 기술경영 MBA 과정의 ‘한국 경제와 산업정책’으로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이듬해 KAIST ‘최우수 강의 교수’로 꼽혔다. 2002년 가을학기 금융공학 MBA 과정의 ‘금융경영사례연구’가 마지막 강의였다. 그는 “2002년쯤 되니까 가끔 평가 절상, 절하가 혼동돼 헛말이 나오더라. 더 강의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 웃었다.

그는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아 ‘외환위기 소방수’ 역할을 했으며 외환위기를 벗어난 뒤에는 ‘리츠(REITs)’ 도입에 앞장섰다.

“기업이 은행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려 할 때 이를 매입해 줄 민간 부문이 없어 곤란한 경우가 많았어요.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리츠를 도입해 국내 기업 구조조정을 도와주자고 당국에 제안한 거죠.”

이날 행사에서는 제자들의 진심 어린 헌사가 이어졌다. 금융공학 과정 1기생인 서병기 신영증권 전무는 제자 대표로 나서 “금융공학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교수님께 ‘T형’ ‘π형’ 교육을 받는 것은 가슴 벅찬 행운이었다”며 축사 뒤 넙죽 큰절을 했다. 후배 교수와 제자들은 “임진왜란을 예견한 율곡 이이 같은 긴 안목의 교육 행정가, 외환위기를 뛰어넘은 경제관료, 사심 없이 제자를 사랑하는 교수님”이라며 깊은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