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가계부채 증가,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이유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089조원이다. 국민 1인당 약 2150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상반기 중 가계부채는 1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정부는 부채의 총량을 억제하고 구조를 개선하는 ‘두 갈래’ 접근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기부양과 가계부채 사이에서 분명한 스탠스를 잡지 못해 부채는 미온적으로 관리됐다. 그러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작년 8월 부동산 대출규제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정부 정책의 방점은 부채 관리가 아닌 부동산 활성화에 찍혔다. LTV·DTI 완화 이전인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가계대출 증가액은 19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19조2000억원과 비슷하다. 반면 규제가 풀린 8월 이후 12월까지 39조6000억원 증가해 1년 전 21조5000억원보다 84% 늘어난 ‘폭증세’를 나타냈다. 여기에는 한국은행이 작년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50bp(1bp=0.01%) 내린 것도 한몫했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 이후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자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가가 앞장서 부채를 권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강화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다면적 해석과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는 주로 대출규제 완화에 따른 것이었지만 올 들어 늘어난 가계부채는 주택시장의 구조 변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전세의 월세 또는 반(半)전세화, 그리고 전세의 자가 수요로의 전환이 큰 흐름을 타고 있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면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대출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늘어난다. 전세라는 사금융이 공금융으로 대체된 것이기 때문에 부채 자체가 증가한 것은 아니다. 전세에 지친 임차인이 주택 구매를 위해 대출을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택구매력지수(HAI)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HAI는 중간소득을 가진 가구가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한다고 가정할 때 현재 소득으로 대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소득이 증가하며 대출금리가 낮아지면 HAI로 표시되는 주택 구매 여력은 증가한다. HAI는 2012년 중반부터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14년에는 170을 넘고 있다.

하지만 HAI 개선은 주택거래 활성화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작년 말 분양가 상한제 등 ‘부동산 3법’이 통과되면서 집값이 더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형성됐고 규제완화로 주택금융에의 접근이 용이해졌으며 여기에 주택시장의 구조 변화가 더해져 주택 구매가 자극된 것이다. 1월 중 전국의 주택거래량은 7만9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1% 늘어 국토교통부가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1월 거래량으로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총 주택거래량은 100만5000건으로 전년 대비 18.0% 증가해 2006년 108만2000건 이래 100만건을 다시 돌파, 8년 만에 최고치로 집계됐다. 주택을 파는 사람은 대출이 힘에 겨웠을 것이고 사는 사람은 대출을 짊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이처럼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면 대출총액이 같다고 하더라도 대출부담 능력은 훨씬 견고해질 수 있다. 부동산거래 활성화가 중요한 이유다.

이제 남은 문제는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총액의 비율로 계산되는 부채부담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거나 부채 총량을 낮추는 선택지에서 우리의 선택은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성장페달을 밟아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규제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절박한 이유다. 경제학은 ‘음울한 과학’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관적 전망을 증폭시킨다.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은 당연히 예의주시해야 한다. 하지만 거래량 증가를 수반한 부채는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정책도 낙관이 비관보다 낫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