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티엘스 매장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티엘스 매장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차(茶) 전문점 '티엘스'. 지난 3일 오후 가로수길을 찾은 젊은층이 매장 내 60석의 자리를 가득 채웠다. 애플시나몬, 스트로베리민트티 등의 홍차 가격이 5000~7000원대로 커피전문점 음료보다 1000~2000원 비싼 수준이지만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일부 고객은 40여종의 홍차 향을 맡아보고, 음료 재료인 잎차를 따로 구입하기도 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라는 가로수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처럼 차를 찾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국내 대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간판을 내건 이곳에 지난 해부터 대형 차 전문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신사역 방면인 가로수길 초입부터 신사중학교 인근의 뒷골목까지 티엘스를 비롯해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 스리랑카 홍차 브랜드 '베질루르' 등 차 전문점이 자리를 잡았다.

◆ 포미족 등장에 차 시장 '쑥쑥'

차 시장이 유통가의 '신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커피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든 데다 최근 건강을 생각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커피 전문점들은 점포 수 증가로 인한 고객 감소, 정부의 출점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식음료 업계 관계자들은 매년 두 자릿수를 유지한 커피 시장 성장률이 올해는 한 자릿수로 꺾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차 시장은 수입 규모만 최근 5년간 3.4배 증가했다. 관세청의 '차 수입동향'에 따르면 녹차, 홍차, 마테차 3종의 수입시장 규모는 2013년 1169만4000달러(약 120억원)에 달했다.

이같은 현상은 백화점 매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차 매출 신장률은 2012년 16.5%, 2013년 23.7%, 2014년 27.7%로 성장해왔다. 이는 백화점 식품관의 효자 역할을 했던 디저트 신장률을 뛰어넘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디저트 매출 신장률은 각각 16.4%, 18.7%, 10.6%를 기록했다.

차 시장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포미족'이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포미족은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자신이 가치를 두는 제품은 다소 비싸더라도 과감히 투자하는 소비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커피가맹점은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차 전문점은 상대적으로 증가, 차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주요인 중 하나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국내 음료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음료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졌다"며 "여기에 커피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소비자들이 차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정용진·서경배 등 오너도 관심

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등 대기업 오너들도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달부터 신세계백화점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유명한 명차들을 단독으로 선보였다. 본점, 강남점, 센텀시티점, SSG 청담점에서 프랑스 명품 홍차 브랜드인 '마리아쥬 프레르'를 판매하고, 국내산 원료로 만든 SSG곡물차를 내놨다.

아모레퍼시픽은 차 전문 매장 오설록과 온라인몰인 오설록닷컴, 제주도에 차 박물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 오설록의 연간 영업이익이 8년 만에 흑자 전환하는 등 호실적을 내면서 매장 수를 20개로 대폭 확대했다.

오설록은 그룹의 신성장부문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지난 연말 사장 직속부서로 승격됐다. 이로 인해 올해부터 서 회장이 오설록을 직접 챙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 회장이 차 사업에 애정을 쏟는 데는 부친인 서성환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영향이 크다. 서 창업주는 한국전쟁이 끝난 1960년 홀로 해외 출장을 다녔다. 당시 커피를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며 "우리도 한국 고유의 차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1979년부터 녹차사업을 시작했다. 다른 농가에서 차 원료를 매입하지 않고 제주도 땅을 직접 개간해 현재 연 1000t 이상의 유기농 차 원료를 생산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창업주가 강조한 차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 기업의 소명"이라며 "직접 수확한 제주도 유기농 녹차를 통해 차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