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학경쟁력 = 국가경쟁력
1993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입국 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인구 800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중동의 수많은 아랍 국가를 상대로 굳건히 버텨내며, 또 많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조금은 당돌하게 질문했다. 이에 대한 라빈 총리의 즉각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이스라엘에는 세계적인 대학이 일곱 개나 있답니다. 우리 힘의 원천은 대학이지요.” 이스라엘 최고지도자의 머리에는 이처럼 대학경쟁력이 바로 국가경쟁력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각인돼 있었던 모양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훨씬 척박한 자연환경을 지닌 나라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으로 이제는 곡물과 육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국가로 변신했다. 이스라엘은 21세기에 들어서만 이미 여섯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그보다도 더 부러운 점은 세계에서 인구 대비 벤처 창업이 제일 많은, 즉 기업가 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미국 나스닥에는 60개가 넘는 이스라엘 기업이 올라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이미 4만달러에 접근했으니 이스라엘은 작지만 강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한국이나 이스라엘은 국력의 기초로 삼을 것이 우수한 인재밖에 없는 나라이므로 대학의 역할은 막중하다. 특히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학문을 선도하고 이를 산업발전에도 연계시키는 소위 연구중심대학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젊은 학생과 함께 연구하면서 미래의 국가 동량을 길러낸다. 그런데 그들의 연구 성과는 논문, 특허 등 비교적 가시적인 것으로 나타나기에 이를 근거로 세계의 대학들을 평가해 많은 기관이 그 랭킹을 연례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교통대가 최근 발표한 대학 순위를 참고해 세계 200위 안에 든 대학 숫자를 나라별로 헤아려 보면 미국이 77개로 압도적이며 중국 9개, 일본 8개, 그리고 이스라엘은 4개지만 한국은 하나뿐이다. 조금 다른 평가기준을 사용하는 영국 대학평가기관 QS에서는 200위까지에 한국 대학을 6개, 이스라엘 대학을 3개 포함시켰다. 여기에서 놀라운 일은 한국에는 모두 200여개의 대학이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전부 다해 7개 대학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교육시스템의 경이로운 효율성이다. 우리 정부와 사회도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알찬 연구중심대학을 키우는 일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하튼 오늘의 대학 캠퍼스에서 민족의 내일을 짊어질 인재가 육성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는 절실하다. 대학은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데 충실하며 이는 대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일고 있는 급격한 변화, 특히 지식의 창출과 전달에 관련된 변화에 대해 우리 대학들은 꼼꼼히 파악하고 적극 수용하면서 스스로 혁신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류사에서 문자와 인쇄술 발명에 이은 세 번째 혁명이다. 세계 유수 대학의 알찬 강의만도 이미 수만 개가 인터넷에 공개돼 있는 상황이다.

“19세기 의사가 오늘날의 의료장비가 완비된 외과 병동에 온다면,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진료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교수가 오늘의 대학에 온다면 그에게는 강의실, 연단, 수업방식, 그리고 학생 등 모든 것이 익숙할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 언어 등은 과목까지 익숙할 것이다.” 대학의 혁신을 강조한 제임스 두데스탯 미국 미시간대 총장의 말이다. 근간에 경제혁신의 골든 타임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대학들의 자기혁신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때를 놓치면 점점 좁아지는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많은 대학은 그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김도연 < 서울대 초빙교수·공학 dykim@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