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막내 탈출 기쁨도 잠시…'짐'이 된 신입사원
제조업체 입사 3년차인 한모씨는 신입사원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두 해를 보냈다. 회사에서 2년 연속 신입 채용을 건너뛰고 경력사원만 뽑았기 때문이다. 3년째 부서 막내인 한씨는 회식 장소 예약과 업무 관련 심부름 등을 전담하고 있다. 이런 잡무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신입사원 채용을 누구보다 반겼다. ‘부서의 활력소’가 돼 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상사 스트레스에 ‘후배 혹’까지

하지만 기대와 설렘이 좌절로 바뀌기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한씨 부서에 배치된 신입사원은 눈치 없이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독불장군형’이었다. 부서 운영 매뉴얼 등 전달사항을 건성으로 들을 뿐 아니라 사사건건 대안 없는 반대의견을 내놔 선배들을 당황케 하기 일쑤였다.

한씨는 “사회생활하면서 처음으로 후배를 받는다는 생각에 꽤 들떴는데, 이제는 상사 시중에다 후배 눈치까지 보느라 차라리 부서 막내일 때가 나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견 건설사 토목본부에서 현장직으로 일하는 심 대리도 박모 신입사원 때문에 고민이 늘었다. 박 사원이 심 대리의 같은 대학, 같은 학과 1년 선배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던 박 사원과는 인사 정도만 하던 사이였다. 심 대리는 사수가 돼 신입사원을 가르치면서 말을 놓을 수도, 그렇다고 어색하게 높이는 것도 이상해서 난감한 처지다. 심 대리는 “일단 서로 존댓말을 하고 있다”며 “저도 당황스럽지만 학교 선배이자 직장 후배인 그가 더 애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서치 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최근 후배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난해 말 입사한 신입사원이 얼마 전 돌연 퇴사한 뒤 김 대리는 다시 막내 자리로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잡무가 많아져 씁쓸한 김 대리에게 선임 과장은 “왜 신입에게 소리를 질렀냐”고 나무랐다. 하지만 김 대리는 자료를 찾아놓으라고 했는데, 그냥 퇴근해버린 신입사원에게 다음날 아침 “좀 더 신경써야 한다”고 한마디 한 게 전부였다.

“여긴 대학 동아리가 아니잖아”

[金과장 & 李대리] 막내 탈출 기쁨도 잠시…'짐'이 된 신입사원
“어머! 다른 것 하다가 깜빡했어요.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천진난만한 말투와 눈웃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양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강 대리는 작년 말 입사한 신입사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남자 직원들만 있던 칙칙한 팀에 여자 후배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만 해도 모든 팀원들이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매번 실수를 그냥 웃어넘기려는 그에 대해 강 대리는 불만이 많다. 강 대리는 “잘못을 지적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쳐야 하지 않냐고 충고도 했다”며 “회사는 모든 것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대학 동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때로는 정체 불명의 ‘미스터리 신입사원’을 만나기도 한다. 중국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대기업 홍보파트의 최 과장은 지난달 초 중국어 전공자로 채용한 신입사원을 부서 후배로 받았다.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은 그이기에 최 과장은 보도자료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맡겼다.

그런데 중국어 번역업체로부터 얼마 전 뜻밖의 전화가 왔다. 아직 입금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신입사원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지금껏 전문 번역업체에 일을 맡겨 왔다고 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신입사원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 뒤 일이 또 터졌다. 중국 거래처와의 중요한 미팅이 있어 통역을 요청했더니, 신입사원은 집안일을 핑계로 일을 피하더니 며칠 뒤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며 사표를 냈다. 최 과장은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평소 그 신입사원의 말과 행동들이 다 거짓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훈남 신입사원 덕에 회사 갈 맛 나네요”

신입사원 덕에 회사 분위기까지 좋아진 사례도 있다. 경기 파주시의 출판사에서 일하는 조 대리는 매일 아침 출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훈남’ 신입사원을 보기 위해서다. 조 대리가 일하는 출판사는 직종 특성상 대부분이 여성 직원이어서 남자 신입사원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조 대리는 그 신입사원이 면접을 위해 회사에 왔을 때부터 눈여겨봤다. 단정한 외모에 예의 바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첫 출근한 날부터 회사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밝아졌다. 외모가 훤칠한 데다 성격까지 곰살맞은 덕에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편집장도 신입사원이 입사한 후로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리님, 대리님 하면서 어찌나 따르던지…. 지루한 일상의 한줄기 빛이랄까요. 회사 갈 맛이 난다니까요.”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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