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문. / 한경 DB
서울대 정문.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당신이 여기 앉아있기 위해 탈락시킨 누군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채무자입니다.”

2일 오전 서울대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5학년도 입학식. 축사를 맡은 김난도 교수(소비자아동학부)가 후배인 15학번 서울대 신입생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서울대는 총장의 입학식사와 함께 학내외 저명인사를 초청해 신입생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별도의 축사를 하고 있다. 올해 입학식 축사 연사로는 ‘청춘 멘토’로 유명한 김 교수가 나섰다.

신입생들을 향해 “여러분이 희망”이라고 강조한 그는 “자기 자신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선(善)하고 책임 있는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 스펙이 아니라 지성의 성장을 위해, 좋은 직업이 아니라 조국의 미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하라”고 주문했다.

이날이 생일이기도 한 김 교수는 “지난 53번의 생일 중 제일 행복했던 날은 서울대에 합격해 입학식을 치른 1982년 오늘이었다”고 회고하며 “부모님께 처음 효도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여러분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꼭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2일 열린 서울대 입학식에서 축사하는 김난도 교수. / 서울대 제공
2일 열린 서울대 입학식에서 축사하는 김난도 교수. / 서울대 제공
그러나 이어진 축사는 덕담보다는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는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는 지금 대한민국 젊은 세대가 힘들다고 한다. 정말 힘든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진단한 뒤 “좋은 날에 답답한 얘기를 꺼내 미안하다. 하지만 듣기 좋은 덕담이나 막연한 인사말보다는 여러분이 맞닥뜨릴 엄혹한 현실을 솔직히 얘기하고 각성과 분발을 당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미생’에 등장한 ‘사업놀이’란 말을 인용해 날선 비판을 던졌다. 정치인은 ‘정파놀이’를, 관료는 ‘규제놀이’를, 대기업은 ‘갑질놀이’를, 일부 고용주는 ‘착취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그저 열심히 하는 흉내만 낸다는 얘기다. 자신을 비롯한 대학 교수들 역시 현실을 수수방관하며 연구실적만 채우는 ‘논문놀이’ 중이라고도 했다.

국내외 도전을 극복해 우리 사회의 이 같은 교착 상태를 풀어낼 대안은 젊은이들에게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나라 안에선 세대 이기주의가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 즉 나이 든 자의 책무”라며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다. 젊은 세대에게 투자하고 양보하고 그들의 미숙함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내일은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나라 밖의 도전은 더욱 심상찮다. 일본은 혐한 감정이 커지고 있고 중국은 한순간에 세계 최강국으로 자라났다”면서 “중국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쥬링허우(90년대생)’ 젊은 세대의 열정이다. 중국 대학생들은 제2의 마윈, 제2의 레이쥔을 꿈꾸며 해만 뜨면 도서관으로 나가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 교정에서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과 이타정신을 배우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김 교수는 “에베레스트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는 히말라야산맥에 있기 때문이다. 그 준령에서 한 뼘만 더 높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며 “혼자 높으려고 해선 안 된다. 선함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우리 공동체를 히말라야산맥처럼 키운 뒤 자신이 한 뼘만 더 성장한다면 가장 높은 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입학식사를 한 성낙인 총장 역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으로 ‘선한 인재’를 제시했다.

성 총장은 “서울대란 이름이 갖는 무게와 사회적 책무는 생각 이상으로 무겁지만 그 길은 혼자 외로이 가는 길이 아니다. 여러분은 스승과 동료, 선후배와 함께인 ‘SNU(서울대)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 일원”이라며 “지식과 스펙만 갖춘 지식기술자가 아님을 명심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진정한 지식인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입학식은 학사보고, 신입생 선서, 성 총장의 식사, 김 교수의 축사, 축가 순으로 진행됐다. 올해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부 신입생은 3366명, 대학원 신입생은 3100명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