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어이 기업들에 배당을 늘리라고 노골적인 압력을 넣을 태세다. 지난달 26일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상장사의 배당 적정성을 판단하는 지침을 만들어 배당이 적은 기업은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하고 명단까지 공개하는 등의 배당확대 방안을 심의했다는 것이다. 재계 쪽 위원들이 이에 반발해 집단 퇴장함으로써 이번에는 불발됐지만, 보건복지부는 안건을 재상정할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배당지침 없이도 주주권을 통해 올 정기주총부터 고배당을 압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민연금 측은 배당확대를 요구할 기업이 30개사 정도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게 뻔하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가 266곳이다. 국내 간판기업들의 1, 2대 주주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배당을 빼먹자고 나오면 상장사들로선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투자수익률에 고민하는 것이야 모르지 않는다. 지난해 수익률이 5.25%로 2013년(4.19%)보다 높아졌지만, 해외 연기금보다 부진하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터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1년, 2년이 아니라 30년, 50년 성과를 보고 장기 투자해야 하는 곳이다. 당장의 고배당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키우는 투자라야 한다. 사실 수익률이 문제라면 공룡이 돼 버린 기금을 여러 개로 분할하거나 민영화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옳다.

배당은 경영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배당과 투자의 배분 결과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해당 기업의 주주와 경영진만 결정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설 일도 아니고 포트폴리오 투자자일 뿐인 국민연금이 왈가왈부할 게 아닌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이라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의 주인인 연금수급자 전체가 참여하는 총회를 열지 않는 이상 달라질 게 없다.

어이없는 것은 정부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12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민연금의 배당 관련 주주권 행사를 경영참여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족쇄를 풀어줬고, 기획재정부는 국민연금을 평가할 때 주주권 행사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한다. 유보금 과세도 모자라 국민연금까지 동원하는 판이다. 이 정부는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