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사상 최대의 정유공장 건설 공사는 어쨌든 한국 기업이 수주합니다. 중동에서 한국 건설사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손영수 대림산업 쿠웨이트 지사장은 “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한국 기업이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한 사업은 쿠웨이트 국영정유공사(KNPC)가 발주한 11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쿠웨이트 남부 알조르 지역에 연간 60만배럴 규모의 제2 정유공장(NRP)을 짓는 공사다.

대림산업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웬만큼 플랜트 사업을 한다는 건설사들이 모두 참여했지만, KNPC가 예비심사를 거쳐 최종 입찰자격을 준 곳은 10여개사. 이 중 8곳이 한국 업체였다. 한국 업체들은 이번 입찰에 5개팀으로 나눠 들어갔다. 손 지사장의 말대로 오는 8일 최종 낙찰자를 선정하는 이번 공사는 한국 업체 중 최소 한 곳이 낙찰받는다.
[다시 쓰는 중동 성공신화] 저유가로 공사원가 쥐어짜기…"한국건설사 빼곤 입찰 엄두도 못내"
○한국 건설사가 저유가에 유리

저유가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중동 국가들은 대규모 공사를 잇따라 발주하고 있다. 일부 일정을 늦추기도 하지만 그동안 원유 판매로 재정 여력이 충분한 데다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대형 공사가 필요해서다.

원유 채굴 원가가 덜 드는 쿠웨이트가 가장 적극적이다. 다만 저유가로 원유 판매 수입이 줄어 공사 원가는 낮춰 잡고 있다. 그런 틈을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과 인도 업체들은 쿠웨이트석유공사(KOC)가 발주한 10억달러대의 집유시설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부터 늘고 있는 20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는 넘보지 못했다. 중국 업체들은 약속한 완공 일정을 맞추지 못했고, 인도 업체들은 대형 공사 경험이 없어 KOC나 KNPC의 예비 심사에 들어올 자격을 얻지 못했다.

한국과 기술력이 비슷한 유럽 업체들은 중동 국가들이 쥐어짜는 원가 수준을 맞추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현지 전문가들은 저유가 시대가 다시 찾아오면서 한국 건설사들의 경쟁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영국 페트로팩이나 이탈리아 사이펨, 스페인 TR 등이 한국 업체들과 경쟁했지만 최근 들어 한국 기업에 컨소시엄을 구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전홍석 현대중공업 쿠웨이트 사무소장은 “중동 석유회사들이 대형 공사를 할 때 10여곳에 입찰 자격을 주는데 예전엔 절반가량만 한국 업체에 돌아갔는데 이제는 7~8개가 한국 업체 몫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공사 줄줄이 대기

참여 기회가 늘면서 한국 기업들의 승전보는 이어지고 있다. 2013년 4월 현대중공업과 대우건설, GS건설과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은 각각 해외 업체들과 손잡고 쿠웨이트 정유시설을 신·증축하는 72억달러 규모의 클린 퓨얼 프로젝트(CFP)를 싹쓸이했다. 한국 건설사들은 지난해 쿠웨이트에서만 사상 최대인 78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이라크에선 작년 1월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4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60억달러가 넘는 카르빌라 정유공장 사업을 따냈다.

향후 전망도 밝다. 정유 시설이나 발전소뿐 아니라 대형 인프라 공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쿠웨이트는 무인도나 마찬가지인 부비안섬을 제2의 두바이로 바꾸는 ‘실크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부비안섬과 쿠웨이트 시티를 연결하는 연륙교 공사를 수주했고 향후 추가로 나올 물량만 100억달러가 넘는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2010년 이후 글로벌 건설업의 공급과잉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건설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다”며 “일감을 많이 확보하고 낮은 비용으로 공사를 할 수 있는 한국 업체들이 건설업의 치킨게임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쿠웨이트=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