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 매화마을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상춘객들이 즐기고 있다.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상춘객들이 즐기고 있다.
3월이다. 봄의 서막을 알리는 꽃 소식이 남도에서 시작해 북상 중이다. 이제 막 피어오른 봉오리마다 생명이 깃들고 봄의 기운이 달콤한 숨결을 내보낸다. 동백의 붉은 꽃, 순결한 하얀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오르면 사람들의 눈도 마음도 환해진다. 3월부터는 다양한 축제도 시작된다. 남도의 꽃잔치가 벌어지는 곳마다 꽃과 관련된 축제가 이어진다.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이와 함께 빛나는 봄을 맞으러 가자. 봄꽃과 함께 떠나는 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 뛰지 않는가.
경남 진해에 있는 여좌천 주변에 핀 화사한 벚꽃.   한국관광공사 제공
경남 진해에 있는 여좌천 주변에 핀 화사한 벚꽃. 한국관광공사 제공
정남진 장흥의 동백 꽃망울

전남 장흥의 봄은 정남진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묵촌리(행정구역 접정리)에 이르러 동백 꽃망울을 터뜨린다. 용산면 묵촌리 동백림은 수령 250~300년의 고목 140여그루가 모인 아담한 숲이다. 이곳 동백나무는 붉은 꽃잎이 5장 달리는 토종 동백이다. 꽃송이가 작아서 화려하진 않지만, 한국 여인네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닮았다.

동백림은 풍수적인 이유로 조성됐다. 마을을 감싸는 산자락이 청룡의 등에 해당하는데, 그 길이가 짧아 마을에 액운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백나무와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꽃은 3월 중순에 만개하며, 3월 초~4월 초 꽃과 낙화를 즐길 수 있다. 나뭇가지에 달린 동백꽃도 좋지만, 송이째 떨어져 붉은 융단이 깔릴 때 더욱 볼 만하다.

묵촌리는 동학 농민군의 장흥전투를 이끈 이방언의 고향이기도 하다. 광활한 동백숲을 보려면 천관산 동백생태숲에 가자. 계곡을 따라 약 20만㎡에 걸쳐 동백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장흥삼합을 비롯해 먹거리 천국인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은 토요일과 오일장(끝자리 2·7일)이 서는 날 열린다. 장흥 특산물이 알뜰한 가격에 거래된다. 야생 차밭과 비자나무 숲을 통과하는 길이 인상적인 보림사, 밤하늘의 신비를 엿볼 수 있는 정남진 천문과학관, 정남진 전망대 등 봄꽃을 찾아가는 길에 들러볼 여행지가 많다.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해안선 숲길 따라 수줍게 핀 동백, 거제 지심도

동백꽃을 한아름 안고 있는 아이.
동백꽃을 한아름 안고 있는 아이.
‘수줍은 봄’은 경남 거제의 바다에 먼저 깃든다. 붉게 핀 동백꽃이 3월이면 해안선 훈풍을 따라 소담스런 자태를 뽐낸다. 장승포항 남쪽의 지심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동백 군락지다. 원시림을 간직한 지심도의 식생 중 50%가량이 동백으로 채워지며 동백 터널을 만든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2월 말~3월 중순이 꽃 구경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지심도에서는 100년 이상 된 동백이 숲을 이룬다. 수백살짜리 동백이 자생하고, 전국에 몇 안 된다는 흰 동백꽃도 이곳에서 핀다. 흰 동백꽃은 날씨가 맞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행운의 꽃이다. 동백꽃에는 ‘하나뿐인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오붓하게 산책하며 만나는 꽃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지심도의 주요 관광지를 잇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고, 동백 꽃망울은 길목에서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 절벽이 있는 마끝, 포진지, 활주로를 거쳐 망루까지 두루 거니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도다리쑥국, 물회 등은 거제의 봄을 더욱 향긋하게 채우는 별미다. 지심도 동백꽃의 붉은 기운 뒤로는 장승포 바다가 펼쳐진다. 섬 정상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맑은 날이면 남쪽 대마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3월 동백꽃의 향연이 마무리되면 4월은 유자 향이 섬을 채운다. 거제시청 문화관광과 (055)639-4172

홍매화 향이 아찔한 양산 통도사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피어 강인함과 지조를 상징하기도 하고, 기품 있는 자태로 고고함을 대표하기도 한다.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남녘에 자리한 수많은 봄꽃 명소 가운데 양산 통도사는 홍매화로 잘 알려진 곳이다. 수령 350년으로 추정되는 홍매화가 해마다 2월이면 꽃을 피우고 상춘객을 불러들인다. 신라시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에서 비롯된 까닭에 ‘자장매’로 불리는 이 매화는 고고하면서도 화려한 자태가 보는 이의 넋을 잃게 한다.

양산시 원동면 일대도 매화 명소다. 영포마을을 비롯해 쌍포·내포·함포·어영마을 등에 매화 밭이 조성되었다. 특히 영포리 영포마을에는 매화나무 2만그루에서 폭죽이 터지듯 꽃이 피어난다. 개인 농원인 ‘순매원’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낙동강 변에 있어서 매화 밭과 강, 철길이 어우러진 장관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에 홍매화가 필 무렵, 김해건설공고에는 ‘와룡매’가 꽃잎을 연다. 매화나무가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와룡매라 불린다. 김해건설공고 인근에는 수로왕릉, 국립김해박물관 등 가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 많아 꽃구경을 핑계 삼아 봄나들이를 떠나볼 만하다. 양산시청 문화관광과 (055)392-3233, 김해시청 관광과 (055)330-4445

여린 꽃그늘 아래 매화 향기 가득한 순천 선암사

이른 봄, 글 읽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매화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했다. 매화 핀 경치를 찾아가 구경하는 탐매는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애틋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맨 앞에 두었으니, 혹독한 겨울을 지나 도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 매화 한 송이는 고매한 군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전남 순천 선암사의 매화는 ‘선암매’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린다. 수백년 동안 꽃을 피워낸 고목이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돼 있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들이 종정원 담장을 따라 고운 꽃그늘을 드리우고, 여행자는 그 아래에서 짙은 매화 향기에 취한다.

순천 향매실마을에는 선암사와 또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산자락을 따라 자리한 마을이 하얀 매화로 구름바다를 이루는 듯하다. 마을 단위로는 전국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매화나무 재배지로, 주민들은 매화가 만개하는 시기에 축제도 연다. 음력 1월에 피는 ‘납월매’로 이름난 금둔사와 조선 시대 읍성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낙안읍성 민속마을도 봄날을 만끽하기 좋은 탐방지다. 순천만정원과 순천만자연생태공원도 함께 둘러보자. 순천시 관광안내소 1577-2013

봄꽃이 가득한 제주 나들이

누구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고 싶다면 제주로 떠나보자. 한림공원은 수선화와 매화가 차례로 꽃을 피우며 봄맞이에 나선 여행자를 유혹한다. 한림공원의 수선화·매화정원에는 60년생 능수매와 20년 이상 된 백매화, 홍매화, 청매화가 일찌감치 꽃을 피운 수선화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룬다. 봄꽃 외에도 아열대식물원과 산야초원, 재암수석관, 연못정원, 협재·쌍용·황금굴 등 볼거리가 많다.

이곳에는 금잔옥대와 제주수선화 약 30만 송이가 식재되었다. 다행히 3월 초까지 순백의 꽃을 매단 수선화를 볼 수 있다. 수선화와 더불어 그윽한 봄 향기를 풍기는 매화는 작고 소박하지만 고매한 선비 같은 기품이 배어난다. 나뭇가지마다 줄지어 피어난 꽃송이가 솜털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특히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능수매의 단아한 자태는 관람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한림공원의 수선화·매화정원에는 60년생 능수매와 20년 이상 된 백매화, 홍매화, 청매화가 일찌감치 꽃을 피운 수선화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룬다. 동양 최대의 동백 수목원 카멜리아힐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다양한 동백꽃이 쉬지 않고 피어 늘 붉은 카펫이 깔린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뽐낸다. 한림공원 (064)796-0001, 노리매 (064)792-8211, 카멜리아힐 (064)792-0088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