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자였고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존 롤스(1921~2002)는 서민층을 대변한 20세기 가장 탁월한 철학자였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롤스는 빚을 얻어 잔치를 벌였고, 하이에크는 그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두 석학은 복지 증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복지를 분배정의와 연결해 복지국가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게 롤스의 사상이다. 롤스는 경제적 자유를 도외시했다. 사회 번영을 위해서라면 사유재산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경제를 계획할 인간의 지적 능력을 신뢰한 롤스는 자유시장은 ‘서민층’에게 불리하다며 평등을 위한 정부의 분배적 복지 확대를 주장했다.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해 비판적인 하이에크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했다. 경제자유 없이는 시민적 자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유시장에서만이 서민층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혼자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선택적 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사상이 서민층의 삶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가. 사유재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게 롤스 사상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하이에크는 사유재산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만이 경제적 번영은 물론 시민적 자유도 번성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처럼 롤스는 사유재산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도 번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틀렸다는 걸 또렷하게 입증한 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불가능하고 결국 망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 하이에크가 아니던가.

분배적 복지 확대를 통해 서민층의 삶을 개선하려고 한 롤스의 노력은 성공했는가. 1970~80년대 유럽의 복지국가가 그의 열정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했다. 관대한 실업급여, 친(親)노동정책 등 정부를 통해 분배적 복지를 향상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사회는 10% 이상의 고실업, 2% 내외의 저성장에 허덕였다. 빈곤층 증가가 복지국가의 결과였다. 빈곤자를 빈곤에서 탈출시키지 못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난 유럽의 복지국가는 2000년대 들어 친시장 개혁에 나섰다. 스웨덴은 복지의 수혜 수준과 기간을 대폭 줄였다. 연금·의료 부문도 일부 민영화했다. 정부 지출과 부채를 줄이고 법인세를 대폭 낮추고 부유세는 철폐했다. 독일 역시 실업자의 권리 축소, 실업수당 수령 기간 단축 등 개혁을 단행했다. 정부 지출을 줄인 것이다. 법인세도 39%에서 30%로 인하했다.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실업률은 1990년대 11%에서 2010년대 5% 내외로 떨어졌다. 경제도 3% 내외로 성장했다. 빈곤층은 줄었고 소득은 늘었다. 롤스가 중시한 서민층의 복지는 하이에크가 중시한 경제적 자유를 통해서만이 효과적으로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을 유럽 복지국가의 친시장 선회가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