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오래 사는 무전장수 시대] 강남 중형 팔고 강북 소형아파트로 옮기니…
한태성 씨(57)는 중소기업체 부사장까지 지내다 작년 초 은퇴했다. 은퇴를 앞둔 2012년 말 서울 반포동에 있는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팔고 강북의 5억원대 아파트로 옮겼다. 아파트 크기도 125.6㎡에서 92.5㎡로 줄였다. 외아들이 지방대에 들어간 터라 아파트 다이어트는 비교적 수월했다. 취득세 등을 빼고도 집을 팔아 생긴 5억원으로 한씨의 은퇴생활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부동산을 과감히 다이어트한 덕분이다.

○집 다이어트로 현금흐름 좋아져

한씨가 아파트 다이어트를 통해 얻은 효과는 상당하다. 당장 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갚았다. 매달 나가던 대출이자 75만원을 내지 않아도 됐다. 아파트 관리비도 월 10만원가량 절약됐다. 물가도 상대적으로 싸 생활비도 10만원 정도 덜 들었다. 이로 인해 매달 95만원의 지출을 줄였다.

수입도 늘었다. 나머지 3억원 중 2억원을 즉시연금에 넣어 매달 60만원씩 받고 있다. 1억원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 은행에 예치해 뒀다. 은행 이자를 제외하더라도 아파트 크기를 줄인 덕분에 매달 155만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한씨는 60세가 되면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을 받을 예정이다. 매달 113만원가량 된다. 61세부터는 국민연금 120만원도 받을 수 있다. 이 정도 수입이면 노후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

한씨는 “처음엔 이웃들을 만나기 위해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일이 잦았다”며 “지금은 물가도 싸고 생활비도 절약돼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장지현 씨(54)는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그는 서울 목동에 시세 7억4000만원 하는 아파트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금융자산은 5000만원에 불과하다. 월 700만원인 수입은 생활비, 교육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 변액 및 보장성보험 월 적립금 등으로 모두 나가고 있다. 아직 갚지 못한 아파트 담보대출금도 1억원이다.

자산컨설팅을 받은 장씨는 올해 중 집을 팔고 4억3000만원 상당의 신도시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 양도세 등 일회성 비용 및 주택을 갈아타면서 대출 1억원을 갚고 남은 돈 2억여원은 지수형 주가연계증권(ELS) 등 중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기로 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명예퇴직이 실현될 경우 2억원가량의 퇴직금을 추가로 손에 쥘 것으로 예상된다. 이 돈까지 포함하면 기대수익률은 연 1.94%(확정)~연 6% 안팎(잠정)이 된다. 연 4% 수익을 가정해도 월 200만원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국민연금(120만원 예상)과 주택연금(100만원 예상)을 합치면 매달 400만원 안팎의 수입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집을 줄임으로써 훨씬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돈 없이 오래 사는 무전장수 시대] 강남 중형 팔고 강북 소형아파트로 옮기니…
○자산가도 부동산 다이어트 필요

상가나 토지를 보유한 자산가도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선 부동산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김모씨(70)는 인천 영종도에 있는 시가 15억원 상당의 밭을 처분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영종도 개발로 길이 새로 나면서 땅값이 세 배가량 뛰자 이를 즉시 처분한 것. 그런데 땅을 판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부양하던 사위가 대장암에 걸렸다. 김씨는 밭을 처분한 돈으로 인천에 5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한 뒤 남은 돈을 노후 대비 및 사위 치료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현금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면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을 터였다.

김씨는 “땅값이 더 뛸 것이란 기대감을 접고 땅을 판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라며 “자산 유동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씨와 장씨, 김씨처럼 은퇴 이후에는 무수익 자산을 보유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큰 집을 갖고 있는 것보다 매달 일정한 현금을 얻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은 “은퇴 후 풍족한 생활을 위해서는 부동산 자산을 줄이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며 “자산 부자보다는 연금 부자가 진짜 부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준오 삼성생명 강북FB센터장은 “부동산은 처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으면 만일의 경우에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무조건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주택연금을 잘 활용하면 집을 팔지 않고도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설태영 씨(80)의 경우 자식들의 지원으로 생활하다가 얼마 전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을 신청했다. 매달 받는 돈은 250만원.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너끈히 살 수 있게 됐다.

■ 85.3%

은퇴 가구의 총자산 중 부동산 자산의 비중. 삼성생명이 지난해 비(非)은퇴자 17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전체 은퇴 가구의 총자산 중위값은 4억2500만원이며, 거주 부동산 비중은 71.3%, 비거주 부동산 비중은 14.0%였다. 반면 금융자산 비중은 평균 11.8%에 불과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