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석 인피노 사장이 경기 구리시 벌말로에 있는 공장에서 세레이져 면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용준 기자
유형석 인피노 사장이 경기 구리시 벌말로에 있는 공장에서 세레이져 면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용준 기자
은행원이던 유형석 씨는 면도할 때마다 불만이었다. 면도만 하면 베이고, 피부 트러블이 생겼기 때문이다. 면도날을 새것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09년 어느날 반도체 장비 및 부품 관련 사업을 하는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교세라가 부엌칼을 세라믹으로 만든다고 하던데 세라믹으로 면도날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은행을 오래 다닐 생각이 없었던 그는 이 말과 함께 “돈을 대겠다”며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동생이 받아들였다.

○세라믹 장점을 면도기에

베일 걱정 없는 면도날…인피노, 세라믹으로 女心 잡았다
인피노는 이후 5년간 연구개발을 거쳐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성용 세라믹 면도기를 개발했다. ‘세레이져’(사진) 브랜드로 지난해 판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3000개 정도 팔렸다.

유형석 사장은 “온갖 종류의 면도기가 나왔지만 면도날은 모두 금속으로 된 제품이었다”며 “금속의 산화를 막기 위해 사용한 니켈 크롬 수은이 각종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금속 면도날 제작에 쓰이는 합금제인 니켈 크롬 등으로 인해 면도한 부위가 화끈거리거나 붉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면 세라믹은 녹이 슬지 않아 합금 성분을 쓸 필요가 없다. 유 사장은 “금속 면도날은 말 그대로 날이 털을 깎지만 세라믹은 얇게 깎인 면으로 제모를 하기 때문에 따갑거나 가렵지 않고 베일 위험도 적다”고 강조했다.

○제품개발에 30억 투자

인피노는 세레이져 개발에 3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유 사장은 “세계 1위 세라믹 소재회사인 교세라와 질레트 등도 세라믹을 소재로 면도날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안다”며 “우리는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인피노는 처음에 세라믹 날을 만들어 프레임에 끼우려 했다. 강도는 금속보다 높지만 쉽게 부러지고 평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유 사장은 퇴직금까지 털어넣은 사업이 망가지기 직전에 모험을 시도했다. 날을 하나씩 만들어 끼우지 말고 면도기 머리 부분을 통째로 세라믹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인피노는 교세라로부터 면도기 손잡이를 제외한 부분을 통째로 납품받아 반도체 사업으로 쌓은 가공 노하우로 날처럼 얇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 사장은 “세라믹을 통째로 깎아 날과 프레임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구조 특허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개발 담당자는 “날을 만들어 끼우지 말고 세라믹을 통째로 가공하자는 발상의 전환이 제품 개발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여성용 시장은 니치마켓

전기면도기를 제외한 습식면도기 세계 시장 규모는 13조원(유로모니터 조사) 정도다. 이 중 여성 면도기 시장은 약 3조원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세레이져는 여성용만 나와 있다. 그는 “여성용 제품이지만 오픈마켓 구매자의 36%가량은 남성”이라며 “남성용 세라믹 면도기 제조는 산·학·연 협력 기술개발사업 과제로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 사장은 “제품을 내놓은 뒤 많은 외국 기업이 찾아왔지만 거래조건이 맞지 않아 제휴하지 않았다”며 “독자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 오픈마켓과 함께 아마존 이베이 등을 통해 해외에서도 판매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가 큰 유럽을 우선 공략하겠다”고 덧붙였다.

구리=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