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 다니는 김정인 씨(54)는 3년 후면 회사를 떠난다. 그동안 성실히 저축해온 데다 큰 욕심도 없던 터라 은퇴 후 돈 걱정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에서 상담한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51세인 아내와 기대수명인 81세와 86세까지 사는 데 필요한 돈은 총 8억2300만원. 준비된 돈은 약 6억3000만원으로 2억원가량 모자랐다. 김씨의 결론은 포트폴리오 재편이었다. 은행의 권유를 받아들여 집을 줄이고 은행 예금을 투자상품 등에 분산 투자하기로 했다.
[돈 없이 오래 사는 무전장수 시대] 집 줄이고 자산 재조정…은퇴 후 월수입 208만원→325만원으로
○집 줄이고, 은행 예금도 분산

직장인은 은퇴 전에 급여를 받는다. 은퇴 후에는 아니다. 연금이나 이자 및 배당으로 살아야 한다. 아무리 자산이 많더라도 매달 사용할 돈이 부족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김진영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장은 “은퇴자산은 가만히 놔두면 썩는다”며 “잠자는 자산을 움직이게 하는 게 은퇴 설계의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 당산동에 5억3000만원 하는 집을 갖고 있다. 은행 예금은 6000만원.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은 각각 1억8800만원과 3억8800만원가량이다. 필요한 자금은 8억2300만원. 외아들 결혼 비용과 생활비 등을 합친 돈이다.

김씨는 신한은행의 조언을 토대로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구성하기로 했다. 우선 은행 예금 6000만원을 지수형 주가연계증권(ELS) 등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돌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기대수익률은 연 1.94%(확정)에서 연 6% 안팎(잠정)으로 올라간다.

시가 5억3000만원짜리 집도 4억원대로 줄이기로 했다. 여기서 나오는 현금 약 1억2000만원은 금융자산에 투입하기로 했다. 6600만원은 원금보장 월이자지급식 주가연계신탁(ELT)에, 5500만원은 연금예금에 넣고 은퇴 후 현금을 수령하기로 했다. 아울러 은퇴하기 전까지 3년간 최대한 아껴 월 70만원을 적금에 붓고, 개인형 퇴직연금(IRP)에도 3년간 월 25만원을 납입해 연 4%의 수익률을 기대하기로 했다. 퇴직 직후 소득이 없는 시기를 없애기 위해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63세에서 58세로 당기기로 했다.

포트폴리오 조정 결과 국민연금은 3억8000만원 수령에서 3억3000만원가량으로 줄었다. 대신 IRP 적립으로 퇴직연금이 1억8700만원에서 2억1200만원으로 늘었고, 부동산 자산을 줄인 결과 금융자산이 6000만원에서 2억2100만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은퇴 준비자금은 6억3000여만원에서 7억6800만원으로 늘었다. 이렇게 해서 김씨가 받게 되는 돈은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나오는 58세 기준으로 월 325만원. 포트폴리오 조정 전에 받을 수 있는 월 208만원보다 100만원 이상 늘었다.

○자영업자는 각종 연금 가입부터

자영업자는 훨씬 열악하다. 국민연금에 뒤늦게 가입한 데다(1999년 지역가입자로 의무 가입), 퇴직금도 없다. 말그대로 ‘무전장수(無錢長壽)’ 시대를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다.

영세 자영업을 그만둔 박정원 씨(60)도 그런 경우다. 1999년부터 국민연금을 납부해 내년부터 월 50만원 남짓한 돈을 받는다. 하지만 총액은 1억5600만원 정도에 그친다. 퇴직금도 없다. 그나마 믿을 것은 4억원 상당의 서울 아파트와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남은 1억원 정도의 금융자산이다.

박씨가 신한은행에서 상담을 받았더니 필요자금은 6억5500만원가량으로 나왔다. 준비된 돈은 국민연금 1억5600만원에 은행 예금 1억원을 합쳐 2억5600만원에 불과했다. 4억원가량이 모자랐다.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는 박씨에게 주택연금에 우선 가입하라고 권했다. 4억원 상당의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살던 집에 그대로 살면서 매달 91만원씩 받을 수 있다. 기대수명까지 총 2억3300만원이 나온다. 여기에 은행 예금 1억원을 빼서 5000만원은 연 6% 수익률이 기대되는 ELS에, 5000만원은 20년간 매달 26만원씩 받을 수 있는 연금예금에 가입했다.

조정 결과 박씨의 준비자금은 2억5600만원에서 약 5억250만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장기근속 직장인보다 부족한 상황이어서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 쓸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 2억3300만원

만 60세인 은퇴자가 시가 4억원짜리 주택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해 받을 수 있는 실질금액의 합계. 가입자가 사망해도 동갑인 배우자가 만 86세(배우자의 기대수명)가 될 때까지 월 91만원(명목금액)씩 받을 수 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