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과 비슷하다. 북극성을 보고 항해하면 방향을 잃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별을 보고 북극성이라고 우길 때다. 북극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속는다. 애초부터 오류가 포함된 통계를 만들어내거나, 서로 비교 대상이 안 되는 통계를 비교한 뒤 특정 주장을 내세울 경우 일반인은 쉽게 주장에 편승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도는 엉터리 통계 해석은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기업매출과 GDP 비중?

‘대기업=악(惡)’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는 좌파운동가들이 흔히 써먹는 통계해석의 오류다. 이런 오류는 식자층에서도 나타난다. J 전 국무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4대 그룹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9년 전만 해도 40%였지만 지금은 50%가 넘는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이 다 해먹고 중소기업은 불쌍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100% 중 50%를 차지하니 대기업만 배부르다고 오해할 밖에.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통계 왜곡이다. 즉 키를 몸무게, 길이를 높이와 비교한 경우와 같다. ‘GDP 대비 기업매출 비중’은 전혀 유의미하지 않다. J씨처럼 계산하면 중소기업 전체 매출의 GDP 비중은 120%에 달한다. ‘중소기업이 잘하고 있네!’ 하지만 J씨는 이 중소기업 계산 결과를 꺼내지도 않았다. 몰랐는지, 모른 척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GDP는 우리가 배운대로 부가가치의 합이다. 한 학교의 반(班) 전체 학생의 성적이 오른 정도를 합한 것이 GDP라면, 상위 4명의 성적이 오른 정도의 합과 비교해야지 4명의 총점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업의 매출이 아니라 영업이익 정도가 비교 대상이다. ‘중소기업은 불쌍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다 보니 엉뚱한 통계를 여론 조성용으로 끌어다 댄 것이다.

OECD 국가 중 복지 28위?

GDP 이야기를 하나 더 해 보자. GDP는 자주 악용된다. 최근 복지론자들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SOCX) 비율이 GDP 대비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대상 28개국 중 꼴찌라고 주장해 왔다. 무상복지 증가로 예산이 펑펑 쓰인다는 복지견제론을 무너뜨리는 데 자주 이용되는 통계다. 올해 예산 376조원 중 복지예산 100조원이 넘는데도 ‘복지천국론’을 내세우는 데 대한 반론이 거센 것이 요즘이다.

이 통계는 맞을까? OECD 통계에 따르면 조사 대상국의 사회복지지출 평균은 GDP 대비 21.6%다. 프랑스 핀란드 벨기에 등은 30%를 넘는다. ‘한국이 복지에 너무 짜다’는 논리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OECD 국가와 한국의 복지비용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복지비용을 마련하는 구조가 우선 다르다. 유럽에선 정부가 세금을 거둬 사회보장비를 지출한다. 반면 한국은 각자가 보험료를 내고 급여를 받는 구조다. 한국에는 또 수많은 비과세, 감면제도가 있다. 이런 것들은 비용지출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공적연금을 시작한 시기가 달라 복지 혜택 정도도 다르다. 유럽 주요 OECD 국가들은 100년이 넘게 공적연금을 시행했고, 한국은 국민연금을 1988년에 도입한 일종의 새내기 국가다. 이런 차이는 연금 수령을 위한 가입 기간이 짧은 것을 의미하며, 복지비용 지출도 적게 잡히게 된다. 현재 추세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한국도 유럽 형태의 복지국가가 될 것은 분명하다. 한국이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코레일은 귀족노조 아니다?

‘코레일 노조가 고임금을 받는 귀족노조’라는 지적에 대해 유명 정치인 중 한 사람인 Y씨는 통계를 들어 반박한 적이 있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 2만4000달러를 4인 가족으로 단순 계산하면 약 10만달러(1억1000만원)인데 코레일 직원의 평균연봉 6300만원은 귀족노조의 임금 수준이 아니다’는 취지로 옹호했다.

하지만 이 계산법은 오류다. GDP와 임금 비교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GDP는 가계 외에 기업, 정부 몫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비교를 제대로 하려면 기업과 정부 몫을 뺀 PGNI(가계총처분 가능소득)로 해야 한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2년 1인당 PGNI은 1367만원이다. 당시 가구당 평균 구성원 수인 2.71명을 곱하면 3704만원(4인 기준이면 5458만원)이다. 코레일의 평균임금 6300만원은 귀족노조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고임금이라는 비판이 틀리지 않는다. “철도노조가 귀족이라면 국민 절대 다수는 천민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합당하지 않다.

위의 사례들은 수많은 통계 오류 중 대표적인 것에 불과하다. 통계 오류는 유명한 정치인, 학자들이 인용할수록 그럴듯하게 들린다. 일반 국민과 학생들은 거의 100% 부지불식간에 속는다. 통계를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출처가 분명해야 하며 비교 기준도 동일해야 한다. 통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