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사절' 초저금리에…금융사, 역마진 공포
우체국예금을 판매하는 우정사업본부(옛 체신청)는 올해 수신 목표를 작년 말보다 2조원 낮춰 잡았다. 기업으로 치면 매출 증가율을 ‘마이너스’로 잡은 격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예금 수신 목표를 낮춰 잡기는 2000년 출범 이후 처음이다. 초저금리 여파로 고객 돈을 굴려 적정 수익률을 내기 어려워지자 다른 서민 금융회사와 벌여온 ‘정기예금 금리 경쟁’을 포기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우정사업본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고금리를 ‘쇼핑’하는 정기예금 고객을 붙잡기 위한 금리 경쟁을 더 이상 벌이지 않기로 했다”며 “자연스러운 예금 이탈을 고려해 올해 수신 목표를 작년 말(62조원·잠정치)보다 적은 60조원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고금리 정기예금 규모가 줄어들고, 이자율이 낮은 수시 입출식 예금 비중이 높아지면 전체적인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다음달 열리는 우정사업운영위원회에서 올해 예금 수신 목표를 확정할 계획이다.

새마을금고에선 1400여개 지역금고와 중앙회가 매일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서로 ‘가져가라’고 미루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지역금고는 고객 예금의 일부만 직접 굴리고, 나머지는 중앙회에 운용을 맡긴다”며 “초저금리 여파로 지역금고의 중앙회 위탁 운용 규모가 급격하게 불자 중앙회도 ‘부담스럽다’며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 중앙-지역점, 예금 떠넘기기 '핑퐁게임'

교직원 군인 지방행정 경찰 등 정부가 원리금을 보전해주는 공제회들은 밀려드는 신규 적립금을 막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교직원공제회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앞으로 사학연금 가입자의 수령액을 줄이기로 하자 교직원들은 공제회 가입 한도를 월 42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높여 달라고 아우성이다. 정부가 연복리 5.15%(25년 가입 기준)를 보장해주는 공제회의 혜택을 더 받기 위해서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회원 복지시설 미흡’이 주요 민원이었지만 요즘은 ‘왜 돈을 더 안 받느냐’는 항의가 가장 많다”며 “회원들에게 연복리 5.15%를 내주려면 매년 6~7%대 수익률을 내야 하는데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역마진이 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공제회가 회원들에게 연 5% 이상 수익을 보장하고 있지만 지난해 7대 공제회 중 연 5% 이상 수익률을 낸 곳은 과학기술공제회뿐이다. 공제회들은 보장 수익률을 연 4%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회원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고금리 특판예금은 자취를 감췄다.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기업의 뭉칫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신 금리가 낮은 요구불예금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은 전년 대비 각각 12.7%와 13.9% 늘었다. 반면 정기예금은 2.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완선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저금리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금융회사들의 ‘예금 사절’도 확산될 것”이라며 “연기금과 금융회사들이 운용수익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저금리의 재앙’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