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창조경제 핵심은 지원·감독 아닌 許容
세계적으로 이용객이 늘어나고 있는 ‘우버’에 대해 서울시는 ‘우파라치’를 풀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치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다스린다. 우버의 등장을 상상도 못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법이 단속 근거다. 현행법에 어긋난다고 단속만 하면 우버 같은 신산업은 뿌리내리기 어렵다. 관련 법체계를 디지털시대에 맞춰 신산업을 수용하도록 개편하는 노력이 먼저라야 하는데 거꾸로 간다.

디지털 신기술은 많은 신산업을 불러올 것이다. 이 신산업들은 하나같이 현행법과 충돌할 것이다. 신문물과 구질서는 흔히 엇박자를 내기 마련인데, 구질서에 집착해 새 시대의 신문물을 내리 거부만 하면 그 사회는 반드시 낙오한다. 우버를 다루는 정부의 조치가 실망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택시업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우버에도 허가를 발급하는 방안을 강구할 일이다. 택시업계의 기득권에 휘둘려 우버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는 대단히 시대 역행적이다. 택시나 우버 이용에 고객의 현 위치와 행선지 정보는 필수적이다. 현재 초기 상태의 우버산업이 이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다는 이유로 형사고발의 철퇴를 내리면 우버는 설 땅이 없다.

현재의 개인정보보호 체제로는 빅데이터산업도 어렵다. 변화가 빠른 시대인 만큼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와 보호방식도 더 섬세하게 규정해야 한다. 모든 정보를 보호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보호해야 할 정보와 보호방식을 시대에 맞게 조정하고 관리를 해나가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창조는 기회면서 동시에 위험이다. 창조경제는 결국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고 수용하는 경제다. 그런데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것의 수용은 두렵다. 대과 없이 임기를 마치고 싶은 공직자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조치는 흔히 현행법에 따라 신문물을 금지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렇듯 위험을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풍조에 정부가 사로잡히면 기회를 겨냥하는 개인의 창조적 위험 부담은 단속 대상으로 전락하고 창조경제는 물 건너간다.

창조한답시고 위험을 무시한 채 분별 없이 뛰어들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위험을 겁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창조는 불가능하다. 창조의 특성이 이러하므로 창조환경을 가장 잘 관리해 창조성과를 최대화하는 방법은 해당 주체가 기회를 찾아 위험 부담을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창조활동의 선택은 대박의 권리와 쪽박의 책임을 직접 감당할 단위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이 선택에 정부가 개입한다면 실패할 경우 쪽박의 책임까지도 정부가 분담해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쪽박의 부담을 덜면 선택이 그만큼 방만해지므로 성공률도 낮아진다. 창조활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오히려 방만한 선택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경제 정책기조의 핵심은 ‘지원과 감독’보다는 모든 권리와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허용’이다.

창조는 신기술 개발에서 시작한다.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에 대해서는 여론도 호의적이다. 사회의 암묵적 합의가 있는 사안인 만큼 관료들도 부담 없이 전향적일 수 있다. 그런데 개발된 기술을 산업화하는 단계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신산업 등장으로 피해를 볼 이익집단이 거세게 반발하고 여론도 기술 개발 지원 때와는 달리 날선 비판을 날리기 일쑤다. 신기술 개발에는 적극적이던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이 정작 신기술이 길을 튼 신산업 도입에서는 우물쭈물하기 쉽다.

그런데 최근 금융규제당국이 발표한 ‘핀테크(금융+기술) 대책’은 그 내용이 모처럼 만에 전향적이다. 정책기조가 지원과 감독에서 허용 일변도로 전환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물론 새로운 유형의 금융 사고가 발발하겠지만 이것이 두려워 신금융산업을 계속 미룰 수는 없다. 사고 사례는 그때그때 수집·분석하면서 투자 실패의 책임이 투자자에게만 한정되도록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해 나가면 된다. 정부는 앞으로도 ‘지원과 감독’보다는 ‘허용’을 기조로 하는 신산업정책을 더 많이 내놓기 바란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