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우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서울대에 모터·철강 전문가 한 명도 없어"
“멋진 자동차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안고 공대에 들어갔는데, 유체역학 같은 이론부터 가르쳐 다소 실망했죠. 그때부터 이론보다는 실험이나 제작처럼 손을 쓰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하반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울대에 들어설 공학전문대학원을 처음 구상하고 설립을 주도해온 이건우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60·사진)은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학에 입학한 1974년 얘기부터 꺼냈다. 공학전문대학원은 산업체 경력 3년 이상인 학사 학위 소지자에게 2년의 교육 과정을 거쳐 공학전문석사(MEP) 학위를 주는 과정으로 ‘공대판 경영학석사(MBA)’로 불린다.

이 학장은 “학생들에게 공학이 딱딱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건 이론 위주 교육 탓”이라며 “지금의 공대는 그때보다도 더 이론에 치우쳐 자연과학대와 차이가 희미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연과학이 자연현상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면, 공학은 그 원리를 이용해 돈 버는 기술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깊은 뿌리 때문인지 기술·공장 등을 천시하는 경향이 공대에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장은 공대 평가가 논문 위주로 이뤄지면서 현장 기술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전문대 교수들조차 논문에 매달리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예컨대 자동차 한 대에 모터가 수십 개 들어가는데 서울대에는 모터 관련 전문가가 없다. 펌프나 철강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교수들이 논문이 잘 나오는 특정 분야에만 매달리다 보니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를 뒷받침할 학문이 취약해졌다는 얘기다.

이 학장은 서울대가 공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려는 목적도 왜곡된 공학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학전문대학원이 직원 재교육 필요성을 느끼는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매출 수천억원대 중견기업 오너들이 ‘진작 서울대가 이런 걸 했어야 한다’고 격려해왔다”고 전했다. 현대차 등 대기업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장은 “기업 입장에서도 비싼 학비를 들여 직원들을 수년간 해외나 일반대학원에 보내기보다 2년 과정인 서울대에 보내는 게 효율적일 것”이라며 “학생들은 학위논문 대신 기업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프로젝트를 교수와 함께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공학전문대학원 설립은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공대혁신방안에도 포함돼 있다. 이 학장은 “장기적으로 공학전문대학원이 전국에 권역별로 생겨 지역밀착형 산학협력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며 “제대로 준비해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겠다”고 강조했다.

공학전문대학원 설립 추진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 학장은 “설립안을 학내에 내놓자 다들 첫마디가 ‘해외 사례가 있느냐’였다”며 “한국 대학은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에 익숙해진 나머지 ‘퍼스트무버(first mover)’를 꿈꾸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