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 접목한 법률컨설팅 회사 > 도쿄의 유빅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이디스커버리 설비로 문서나 파일 등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고 있다. 배석준 기자
< IT 접목한 법률컨설팅 회사 > 도쿄의 유빅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이디스커버리 설비로 문서나 파일 등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고 있다. 배석준 기자
올해로 법률시장 완전 개방 10년째를 맞은 일본의 법조계가 과잉 배출된 변호사 숫자와 맞물려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급증한 변호사의 취업난이 골칫거리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다. 한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변호사 2만명 시대를 열었다. 영국 등 유럽연합(EU) 로펌이 내년 7월부터, 미국 로펌은 2017년 3월부터 합작로펌 설립과 국내 변호사 고용이 가능해진다. 시대착오적인 변호사법에 얽매여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물쭈물하다 자칫 영·미권 로펌에 주도권을 뺏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Law&Biz] 변호사 취업난 일본…젊은층, 글로벌 로펌 문 두드려
지난 14일 일본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는 도쿄 마루노우치 거리의 신마루노우치 빌딩 29층. 왕궁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 미국 로펌 모리슨앤드포스터가 자리 잡고 있다. 1987년 외국 로펌 중 가장 먼저 진출해 일본 로펌과 업무 제휴, 합작 등을 거쳐 지금은 변호사 120여명의 10위권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과 일본 변호사 비율은 6 대 4 정도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에서 애플 측을 대리하기도 했다. 이 회사 파트너인 루이즈 스타우프 변호사는 “미국 부동산 투자, 인수합병(M&A), 기술 관련 소송 등으로 분야를 계속 확대했으며 변호사 수도 처음보다 다섯 배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변호사 채용 기준과 관련, “국제적 경험 및 전문적 능력이 있는지와 좋은 성적으로 변호사가 됐는지 등을 우선 본다”고 말했다.

글로벌 로펌에서 일자리 찾는 변호사들

일본에서 법률시장 개방은 포화상태의 변호사시장에 다소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계 로펌인 오릭헤링턴앤드서트클리프는 1997년 상이라는 소규모 국제법률사무소와 합작해 일본에 사무소를 냈다.

오릭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는 야쿠라 신슈케는 “법률시장 개방으로 외국 변호사와 제휴해 일할 수 있게 됐다”며 “일본 변호사의 기회 확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법률시장 개방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야쿠라는 지식재산권을 비롯한 국제소송을 많이 취급한 오사카의 한 일본 로펌에서 일하면서 미국과 영국,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글로벌 부문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일본 로펌에서는 국제 소송을 다루는 것이 어려웠다”고 이직 배경을 설명했다.

법률 유사 분야에서 돌파구 찾나

도쿄 미나토구의 유빅 본사 7층. 사무실이 컴퓨터와 과학기자재 등으로 가득 찬 모습이 기술 관련 벤처회사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이 회사의 본업은 증거개시절차(디스커버리)라는 법률소송과 관련돼 있다. 증거개시절차는 영·미 국가에서 정식 재판이 진행되기 전 소송당사자가 사건과 관련해 각종 증거자료를 공개하도록 상대방에게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일본 기업도 영·미계 국가에서 재판이 열릴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일본변호사연합회에서 일하는 다카토리 요시히로 변호사는 “일본 법정에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영·미계 기업과의 국제 분쟁은 물론 일본 기업 간 분쟁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변호사 사무실에서 녹취한 증인의 증언을 법정에 제출할 수 있는 데포지션(선서 증언) 제도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과잉 공급된 변호사 감축 노력도 병행

일본 법조계는 과잉 공급된 변호사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보다 5년 앞선 2004년 로스쿨 출범 이후 2007년부터 매년 2500명가량의 변호사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판·검사, 로펌, 기업 법무팀의 수요는 매년 4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법률시장은 9조1400억원 규모로 3조원이 채 안 되는 한국의 세 배 이상이다. 하지만 변호사 수(작년 말 현재 3만5045명)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 문제다. 집에서 일하거나,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됐더라도 무급인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 최대 로펌인 니시무라 아사히의 가와이 고조 파트너 변호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변호사가 많아 변호사 수를 줄이기로 사회적으로 합의를 봤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일본은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2007년 이후 처음으로 2000명 이하인 1810명으로 줄였다. 단계적으로 1500명까지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 이디스커버리

e-discovery. 전자증거개시제도. 종이문서 등 아날로그 증거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증거개시제도에 컴퓨터 파일 등 디지털 증거를 추가한 것이다.

도쿄=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