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3일 내정 발표 직후 내놓은 첫 일성은 ‘소통’이었다. 야당을 국정의 축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는 첫 행보로 새정치민주연합 당직자실을 방문해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과 만났다.

수도권 규제, 경제활성화법 등이 여야 의견 차로 막혀 있는 상태에서 풀어야 할 정국 최대 과제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정치 갈등 해소다. 단순히 야당과 자주 만나겠다는 선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진정한 정치 대타협으로 경제를 살리고 국방과 안보를 튼튼히 하는 내실 있는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집권 3년차인 올해를 경제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한 ‘골든타임’으로 선언했다. 노동 교육 금융 공공 등 4대 분야 구조 개혁이 필두다. 하지만 연초부터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중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경쟁국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데도 정치 갈등은 여전하다.

고질적인 정치 갈등이 경제와 안보를 흔들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26위였다. 2004년(29위) 이후 최저 순위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물론 말레이시아보다 뒤처졌다. 중국은 28위로 한국을 곧 추월할 기세다.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는 97위를 기록했다. 정치 갈등이 경쟁력 순위를 끌어내린 요인임을 증명해준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치적 갈등이 타협 없는 대립과 다수결의 파괴를 불러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고 진단했다.(비망록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 실록’)

갈등은 비용으로 연결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사회갈등 연구(2013년 8월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갈등이 심각하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최대 24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與, 먼저 손 내밀고…野, 與 흔들기 멈춰야

지난 11일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정보통신, 의료, 바이오 등 7대 주요 중점과학기술의 85개 기술 분야 중 13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로 올해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안보 상황은 올해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25일 성명을 내고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에 남조선이 계속 도전할 경우 단호한 징벌로 다스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5·24 제재 해제가 이산가족 상봉의 조건이라고 했지만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한 도발적 반응이다. 북한은 연초부터 핵 실험 중단 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한·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핵 실험의 명분을 축적하려는 의도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이런데도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까지 사사건건 진영으로 갈려 갈등의 바이러스를 위험 수위까지 끌어올린 게 우리 정치권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모두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이다. 내각에 소통형 팀워크를 가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정국 주도권을 가진 여권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올바른 순서다.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처리를 입으로만 외칠 게 아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진정성 있게 야당을 설득하고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경제 살리기’를 외쳤지만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지도부와 만나 끝까지 설득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야당도 해묵은 방식의 정치적 계산을 버려야 한다. 여권이 흔들려야 집권 가능성이 커진다는 ‘마이너스 섬’ 게임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집권은 요원하다. 적어도 경제 국방 안보 분야는 싸움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대타협 없이는 후세대에 결코 좋은 삶을 물려줄 수 없다. 마침 이 후보자에 대해 야당은 의례적인 덕담 수준을 넘어 화답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모처럼 정치인 출신 총리가 나와 (인사청문회에) 합격하면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성명서까지 내고 “소통하는 능력이 좋으신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여기서 대타협의 희망을 본다.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느냐 여부는 청와대와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 모두에 달렸다.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