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찰의 쉬운 승진시험 '뒷말'
2년 전 이맘때 수습기자로 경찰서를 취재할 때 밤마다 독서실로 변해버린 경찰서 풍경이 놀라웠다. 민원안내실부터 경비과, 교통과 등 부서 구분 없이 야간 당직자들 앞엔 언제나 승진시험책이 펼쳐져 있었다. 몇몇 경찰관은 헤드폰을 낀 채 인터넷 강의에 빠져 있었다. 매년 1월에 있는 승진시험을 위해선 업무시간에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지난 17일 치러진 경장~경정 승진시험 결과를 놓고 경찰 조직에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업무시간에도 공부에만 몰두하는 등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시험 난도가 크게 낮아지면서 평소 업무 성과가 승진 여부를 갈랐다. 상대평가 방식의 근무평정이 합격자와 탈락자를 가르다 보니 일선 경찰 사이에선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경찰관 승진시험 사이트엔 “시험에 응시한 팀원 모두가 탈락한 결과를 두고 회식자리에서 선배와 후배가 서로 말다툼을 벌였다”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찰은 국가 공무원 중 유일하게 직급마다 시험을 통해 승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 5개 직급은 시험만으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경찰대나 간부후보생 출신이 아닌 순경 출신 경찰관들에게도 승진 기회를 주기 위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경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열심히 일한 경찰에게 승진 기회를 주겠다는 경찰청 입장과는 달리 일선 경찰들은 주관적 평가인 근무평정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에 근무하는 한 경사는 “업무 성과보다 팀장과 친한 사람이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며 “당장 이번 명절 때부터 팀장과 과장에게 선물꾸러미를 들고 가는 동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팀장-과장-서장으로 이어지는 근무평정 구조상 실무책임자인 팀장으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결국 최종 평가에선 서장을 ‘모시는’ 경찰서 내근직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이 있는 곳에 승진이 있다’는 강신명 경찰청장의 취지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경찰은 없다. 하지만 근무평정 제도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대책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