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의 시 ‘봄날1’을 그린 민경갑 화백의 작품.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전시된다.
김남조 시인의 시 ‘봄날1’을 그린 민경갑 화백의 작품.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유명 조각가 고(故) 김세중 씨의 부인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김남조 시인(89)은 평생 시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소화해냈다. 그의 시는 정열의 표출보다는 한껏 내면화된 종교적 심연 가운데에서 절제와 사랑을 잡아내며 자아를 성찰한 게 특징이다.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목순’ ‘사랑초서’ ‘바람세례’ ‘심장이 아프다’ ‘귀중한 오늘’ 등 17권의 시집과 수필집 12권을 냈다. 3·1문화상과 만해대상을 받았다.

정일 씨의 ‘아가.4’.
정일 씨의 ‘아가.4’.
‘사랑의 시인’ 김씨의 다양한 시를 시각예술로 형상화한 그림을 모은 이색적인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 갤러리에서 26일부터 내달 4일까지 펼쳐지는 ‘김남조 시, 그림으로 읊다-시가 있는 그림’전이다.

민경갑 화백을 비롯해 서세옥, 박돈, 황주리, 전준엽, 이희중, 안윤모, 김희중, 이명숙, 김선두, 노주환, 황은하, 정일, 김범 등 유명작가 14명이 김 시인의 주옥 같은 시를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 20여점을 걸었다. 화가들은 저마다 시정(詩情)과 화의(畵意)가 넘치는 특별한 그림으로 김 시인의 시를 읊조렸다.

민 화백은 따뜻한 색채로 김 시인의 시 ‘봄날 1’을 차분하게 시각 언어로 승화했다. 상큼한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느낀 순박한 감동을 붓질로 형상화했다는 게 민 화백의 설명이다.

‘화단의 신데렐라’ 황주리 씨는 유명시 ‘편지’를 꽃잎 속에서 기타를 치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 끌어안는 등의 삽화 같은 풍경화로 되살려냈다. 그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작업할 때 자주 읊조리는 애창시”라며 “가슴 한편에 숨겨둔 아련한 추억과 낭만을 마치 소설을 쓰듯 그려냈다”고 말했다.

‘퓨전 한국화가’ 전준엽 씨는 시 ‘내가 흐르는 강물에’를 푸른 강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몽환적인 작품으로 풀어냈다. 전씨는 “지난해 가을 지리산, 설악산을 따라 여행하며 본 한국 소나무를 마음속에 담아놨다가 최근 김 시인의 시와 오버랩시켰다”고 설명했다.

안윤모 씨는 ‘고백’을 그렸다. 동물을 의인화한 그의 작품은 마치 금가루와 은가루가 사륵사륵 내리는 아주 특별하고 몽상적인 벤치에서 묘령의 여인이 옆에 와 앉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노태웅 씨는 ‘겨울바다’를 눈 내린 바닷가 인근 풍경으로, 원로화가 박돈은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는 그림을 통해 ‘달밤’을 동양적 윤회사상이 담긴 시각 언어로, 한국화가 김선두 씨는 시 ‘산에게 나무에게’를 천연물감인 석채를 사용한 이색적인 그림으로 각각 탄생시켰다. 한경갤러리 관계자는 “예술의 목적은 결국 아름다움의 창조인 만큼 그림과 시의 만남을 통해 거대한 대자연의 힘과 평화,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