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이주은 씨가 최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에 출연, 판소리를 선보이고 있다.
명창 이주은 씨가 최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에 출연, 판소리를 선보이고 있다.
판소리 명창 이주은 씨(43)는 어린 시절부터 소녀 명창으로 유명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목포 시립국악원에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국악원에서 보성소리를 가르치던 고(故) 김흥남 선생은 어리지만 힘이 있고 맑은 목소리를 지닌 이씨를 알아보고 ‘무릎 제자’로 키웠다. 목포시에서 열리는 잔치라는 잔치에는 모조리 초청돼 소리 실력을 뽐냈다. 하의도, 증도 등 배를 타고 섬까지 다녔다. 목포에 소녀 명창이 있다는 소문이 서울까지 났다.

당시 소리꾼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명창 신영희 씨(73)가 꼬마 명창을 보기 위해 목포로 내려갔다. 신씨가 어린 이씨에게 물었다. “사람이 크게 되려면 중앙 무대에 서야 하는데 나와 함께 서울로 갈래?” 그 어린 꼬마는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갈게요.” 이씨는 이렇게 열 살부터 신씨의 집에서 먹고 자며 소리를 배웠다. 이씨의 상경을 계기로 판소리 꿈나무들이 큰 선생님을 찾아 서울로 유학 오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씨는 서울 국악고, 서울대 국악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4년 춘향국악대전 판소리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타며 명창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해 사비 2000만원을 털어 국악 음반 두 장을 냈다. 어린 시절부터 목표로 삼았던 판소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서다. 지난해 8월 발매한 첫 번째 음반 ‘이주은의 다섯 이야기’에는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등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대목 5개가 실렸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두 번째 앨범 ‘순간들’은 사랑과 이별, 그리움에 관한 판소리 대목에 러시아 피아니스트 빅토르 데미아노프의 피아노 반주를 입힌 앨범이다.

“판소리는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부릅니다. 북 대신 피아노 반주 위에 판소리를 부르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내 봤어요. 2010년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를 통해 이런 시도를 대중에 선보였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죠. 우리 고유의 소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도를 꾸준히 해야 하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 내친김에 《피아노 즉흥연주에 의한 만정제 춘향가와 아리랑》이란 악보집도 펴냈다. 2집 앨범에 실린 곡의 성악과 피아노 악보를 한글, 영문, 중문으로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점자도서관에서도 발행될 예정이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인 ‘룸메이트’에 판소리 선생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전통이 전통으로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 전통음악의 가치를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방송에서 그룹 god의 노래 ‘어머님께’를 판소리 버전으로 불렀는데 5일 만에 해당 영상 유튜브 클릭 수가 6만건을 기록한 거 있죠. 당시 경험을 통해 ‘아,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음악을 전하려면 그들이 호기심을 느낄 만한 장단에 맞춰서 노래를 바꿔 부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죠. 동시대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는 17년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으로 재직 중이다. 30여년 동안 연마해온 판소리만 부르면서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사비까지 털어가며 판소리를 알리고 방송에 출연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판소리가 가진 풍성한 힘을 믿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되고 판소리의 고유함을 살리면서도 그 장점을 승화시키는 컬래버레이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이런 노력이 더해진다면 세계인에게 통하는 K판소리도 가능해지겠죠.”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