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디자이너 최고 스펙은 '삼성과 협업'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커지면서 글로벌 디자인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와 협업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내로라하는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삼성과 일해보고 싶다’고 먼저 구애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과거 거액의 연봉을 주고도 스타급 디자이너 영입에 애를 먹던 때와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조각 작품’ 같은 삼성 TV

스타 디자이너 최고 스펙은 '삼성과 협업'
삼성전자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에서 공개한 82인치 커브드(곡면) TV S9W는 “TV를 예술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메탈 큐브 위에 스크린을 얹어 마치 미술관 속 조각품을 보는 듯하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이 TV는 스위스의 유명 산업 디자이너 이브 베하가 디자인했다. 베하는 지난해 세계적 히트 상품인 웨어러블(착용형) 팔찌 ‘조본’을 디자인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요즘 가장 ‘뜨는’ 산업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베하는 “하나의 조형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얇고 휘어진 날 모양으로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베하는 삼성전자 TV 디자인을 이끄는 강윤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장(전무)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업은 ‘삼성 TV 디자인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는 강 전무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디자인 업계에서는 “5년 전만 해도 삼성이 유명 디자이너를 모셔오는 방식의 협업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디자이너들이 삼성과 일하는 것을 중요한 이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자동차 디자이너로 유명한 크리스 뱅글을 시작으로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2013년 말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한 팀 거젤을 부사장으로 영입했고 지난해에는 애플 아이폰5S의 색상과 소재 선정을 총괄한 디자이너 베아트리체 산티치올리와 함께 로봇청소기 파워킹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국내 출신 실력파 디자이너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달 초에는 영국의 세계적 디자인 회사 탠저린의 공동대표를 지낸 이돈태 씨를 디자인경영센터 글로벌디자인팀장(전무)으로 영입했다.

○디자인에 ‘올인’하는 삼성

삼성이 디자인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96년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면서다. 당시 이 회장은 “기업 디자인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 한다”며 디자인 경영을 주문했다. 이때부터 삼성전자는 단순히 제품의 겉모습으로만 인식하던 디자인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2001년 삼성전자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를 설립했다. 이어 2005년 이 회장은 세계 패션과 디자인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밀라노로 사장단을 불러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고 이른바 ‘제2의 디자인 혁신’을 선언했다. 삼성의 디자인 4대 전략도 이때 나왔다. 독창적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체계를 구축하고, 국적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우수 인력을 확보하며,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금형기술 인프라를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삼성이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스마트폰 경쟁사인 애플에 비해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일부의 지적을 벗어 던져야 하는 게 대표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아이폰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애플 제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데 반해 삼성 스마트폰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삼성 디자인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은/남윤선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