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이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집무실에서 증권가를 가리키며 금융투자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이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집무실에서 증권가를 가리키며 금융투자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건물 23층에 있는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68) 집무실. 책상 한쪽 끝에 쌓여 있는 ‘발전 방안’이라는 제목의 서류 뭉치 높이가 족히 50㎝는 될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박 회장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금융투자업계 영업활력 제고를 위해’라는 메모지가 널려 있었다. “곧 떠나실 분 같지 않다”(2월3일 임기 만료)고 하자 박 회장은 웃었다. “여유가 생기는 것은 좋은데 금융투자업계를 키울 방안을 끝까지 챙기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안타까운 것은…”이란 말을 자주 했다.

박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이 수여하는 다산금융상(17회 증권·투신부문상, 24회 공공금융 최고경영자상)을 2회 수상한 국내 금융투자업계 원로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금투협회장 연임을 포기, 다음달 임기를 마치는 그에게 “자본시장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답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관피아냐 아니냐’가 아니라 ‘시장 전문가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회사가 없는 이유는 뭡니까.

“금융산업을 규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게 근본 문제입니다. 금융산업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데 위험 없는 산업으로 만들려는 규제는 맞지 않습니다. 원리금을 보장하라고 하거나 리스크(위험)가 크다는 이유로 파생상품 시장을 고사시키면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없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규제 완화는 경쟁을 촉진하고 산업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합니다.”

▷규제와 자율성을 조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인데요.

“감독을 강하게 할 필요도 있습니다. 내부 통제(컴플라이언스) 강화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진국처럼 ‘네거티브’ 방식을 따르는 게 맞습니다. 네거티브제로 규제를 확 풀었으니 앞으로 잘못하는 것은 당신들 책임이라고 하면서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직접 규제가 중심이다 보니 내부 통제를 강화할 겨를이 없어요. 감독은 확실하게 하고 규제는 약한 선진국 모델을 따라야 합니다.”

▷수수료만 생각하는 업계도 문제 아닌가요.

“과거엔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금융상품이 쏟아지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업체와도 경쟁해야 하는 지금은 용인될 수 없지요.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증권사만 하더라도 유통시장 기업공개 같은 전통적인 분야에 머물지 말고 창업, 인수합병(M&A), 지배구조 개선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한국 시장이 너무 작지 않습니까.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CEO가 돼야 합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CEO는 문제가 많은 것 아니겠어요. 새로 사장이 임명되면 낙하산이냐 관피아냐 하며 말이 많은데 진짜 따져야 할 것은 전문성에 바탕한 통찰력이 있느냐 없느냐지요. 또 한 가지는 융·복합화되는 금융산업의 추세를 거슬러선 안 됩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내부뿐 아니라 정보기술(IT)까지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이 대세잖아요. 이런 흐름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핀테크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금융산업은 그동안 은행 중심으로 육성됐거든요. 예컨대 정부가 핀테크를 집중적으로 키운다고 하면서 내놓은 게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입니다. 여전히 은행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은행권 내부에서도 기존 인터넷 뱅킹과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수익성도 문제라고 지적하고요. 결국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한 것이지요. 은행 외의 다른 분야에서 핀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협회장 3년간의 성과를 소개해 주십시오.

“내 입으로 말하기가 좀…. 우선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돼 종합금융투자업자, 이른바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한 발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아시아에서 글로벌 금융회사와 경쟁할 수 있는 기본은 갖춰졌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취임 초부터 강조한 영업용 순자본비율(NCR) 규제 완화입니다. 폐지까지는 아니지만 작년에 크게 완화됐죠.”

▷장외시장을 제도화한 것도 있지 않습니까.

“‘K-OTC’ 시장이죠. 이 시장 개설도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장외시장 종목들이 장내 종목과 공존할 수 있게 됐죠. 퇴직연금 등 연금과 관련해서 기금형 제도 도입을 추진한 것도 있었네요.”

▷아쉬운 점이나 숙제로 남은 것이 있습니까.

“독립투자자문업자(IFA) 제도를 도입하자고 금융당국에 건의했는데 추진 상황이 빠르지 않아 좀 섭섭합니다. IFA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완전 판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구요.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면서 관련 인프라인 IFA는 즉각 시행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임직원 명함에 ‘신통행(信通行)’ 문구가 있던데요.

“신뢰받고 소통하며 행동하자는 제 다짐입니다. 금투협회 전 직원의 슬로건이고요. 대우증권 사장 시절이던 1999년 개최한 단합대회 ‘대우증권 솟을마당’이 생각나네요. ‘지방 직원들을 힘들게 수도권으로 부르지 말고 이번엔 서울 직원들이 고생하자’란 생각에 경주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무박 2일간의 단합대회 이후 임직원들이 열정을 갖고 일을 해줬기 때문에 대우증권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었습니다.”

▷주가지수가 3년째 제자리 걸음입니다.

“내 팔자가 좀 그런가 봐요. 항상 어려운 회사만 맡다가 떠나고 나면 좋아지더라고요(웃음). 금융투자업은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고령화에 따른 수요 감소, 저금리로 인한 투자자들의 보수화, 온라인 투자 활성화 등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습니다. 대안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기관투자가들을 시장으로 적극 끌어들이는 거죠. 퇴직연금의 주식시장 참여 확대가 특히 중요합니다. 호주나 미국이 좋은 사례입니다. 국내 기업의 수익성 또한 좋아져야 합니다. 이게 쉽지 않으니까 배당이라도 해서 배당수익률을 높이자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외국인들은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이야기를 하고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면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절실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열정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절실함이 없으면 목표가 없어지고 그러면 주어진 것 안에서 안주하게 됩니다. 생각의 틀을 깨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교수를 꿈꾸던 청년 박종수가 금융권에 몸담게 된 것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다. 다들 힘들게 살던 시절, ‘KS(경기고·서울대) 마크’도 당장 도움이 되진 않았다. 당시에도 임금 수준이 높던 은행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1970년 외환은행에 입행한 이유다. 그렇게 17년, 은행과 종금사를 거치며 금융맨 경력을 다지던 박 회장은 연이은 도전에 직면했다. 1990년 금융 불모지나 다름없는 헝가리의 대우은행장으로 발령받았다. 이 은행을 40개 현지 은행 중 9위로 끌어올린 뒤 귀국, 대우그룹 해체로 난파선 분위기였던 대우증권 ‘선장’을 맡았다. 1999년 9월부터 사장으로 5년간 밤낮없이 일했더니 회사도, 자신도 살 만해졌다고 회고했다.

△1947년 서울 출생 △1966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70년 외환은행 입행 △1988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0년 헝가리 대우은행장 △1999년 대우증권 사장 △2001년 한국증권업협회 부회장 △2005년 우리투자증권 대표 △2012년 금융투자협회장

장규호/황정수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