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소비자 삶을 연구했다…'세상에 없는 제품'이 나왔다
가전업계에 혁신 경쟁이 뜨겁다. 소비자 눈길을 끌기 위해 앞다퉈 ‘세상에 없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 취향을 읽기 위해 별도 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읽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이달 초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공개한 신형 세탁기 ‘액티브 워시’가 대표적이다. 소비자가 세탁기 위에서 와이셔츠 등의 목때를 손빨래한 뒤 곧바로 세탁통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제품이다. 세탁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묵은 때를 벗겨내는 초벌 빨래를 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원래 인도 소비자의 취향을 연구하는 삼성전자 인도 라이프스타일연구소에서 낸 아이디어를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사장이 직접 채택해 제품화했다. 초벌 빨래는 어려운 기술은 아니지만 전 세계 100여년 세탁기 역사에서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다. 삼성 관계자는 “언뜻 생각하면 불편할 것 같지만 초벌 빨래를 원하는 수요가 적지 않다”며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제품”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15일 출시한 신형 정수기 ‘직수형 온정수기’도 비슷한 사례다. 이 정수기는 저수조가 없어 물때 걱정이 없는 직수형 정수기에 온수 기능을 더한 제품이다. 1L(리터) 용량의 스테인리스 진공 온수탱크를 추가해 섭씨 90도가량의 온수를 제공한다. 정수기 물을 이용해 커피, 아기 분유 등을 타거나 컵라면을 자주 끓여 먹는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이다. 지금껏 시중에 나온 직수형 정수기는 온수 기능이 없었지만 설문조사 결과 온수 기능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LG전자는 과감히 ‘상식 파괴’를 시도했다.

삼성과 LG의 소비자연구소는 혁신 제품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전 세계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중국 인도 싱가포르 브라질 등 7개국에서 라이프스타일연구소나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 이노베이션팀’을 운영하고 있다.

북미 프리미엄 냉장고 시장에서 인기를 끈 ‘4도어 프렌치형 냉장고’ 아이디어가 여기서 나왔다. 미국 가정의 파티 문화를 겨냥해 냉장고 중간에 육류 등을 따로 저장할 수 있는 서랍칸을 설치한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야심작으로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노트 엣지’의 구부러진 ‘엣지’ 아이디어도 6년 전 미국 새너제이에 있는 라이프스타일연구소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도 1989년부터 국내 가전업계 최초로 소비자 생활 환경과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는 생활문화연구실을 설립했다. 이 연구실은 현재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라이프 소프트 리서치(LSR)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결합해 인기를 끈 LG전자의 ‘디오스 김치톡톡 프리스타일 냉장고’가 이 연구소 작품이다. 2012년부터 소비자 가정 방문을 통해 기성 세대는 대용량 냉장고를, 신세대는 김치냉장고를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해 두 세대를 아우르는 ‘퓨전 냉장고’를 내놨다.

연구소에는 심리학 사회학 경영학 뇌공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소비자 반응을 연구한다. 예컨대 매장에서 소비자의 뇌파 반응을 체크한 결과 디자인이 색다른 제품을 볼 때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을 토대로 LG전자는 금속 소재 위에 미세한 입자로 패턴을 새긴 ‘디오스V9100’ 냉장고를 선보이기도 했다.

동부대우전자는 별도의 가전연구소 등을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는 반드시 현지 특성을 일차적으로 고려한다. 최근 중동시장 공략 과정에서 현지인이 선호하는 금색을 입힌 ‘골드 전자레인지’와 ‘골드 드럼 세탁기’를 내놔 주목받았다.

주용석/정지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