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저유가 쇼크에 흔들리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까지 수직 하락하면서 원유 재고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지난해 원유 재고손실이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몇 달 전 비싸게 수입한 원유값이 떨어지면 가격이 하락한 만큼 회계상 손실 처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이 무더기로 적자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비쌀 때 원유 들여왔는데"…低유가에 정유사 재고손실 2조
○정유사의 ‘무더기 적자’ 현실화

SK증권은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손실 등으로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470억원, GS칼텍스는 4334억원, 에쓰오일은 39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유사들도 적자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은 1977년에 이어 창사 이래 두 번째 적자를 내는 것으로, 1980년 SK그룹이 인수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에쓰오일도 34년 만의 적자다. 국내 4위 정유사인 현대오일뱅크만 유일하게 소폭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비쌀 때 원유 들여왔는데"…低유가에 정유사 재고손실 2조
정유사들의 무더기 적자는 지난해 4분기에 원유 재고손실 부담이 급격하게 불어난 탓이다. SK이노베이션이 8000억원 안팎으로 정유업계 전체로는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수입하는 원유의 80~90%를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9월 말 배럴당 95.01달러에서 12월 말 53.6달러로 43.6%나 급락했다.

정유사들의 수익 잣대인 정제마진 회복도 불투명하다. 싱가포르 상품시장에서 두바이유 단순정제마진은 지난해 1분기 배럴당 0.42달러였으나 2분기와 3분기에는 각각 -0.92달러와 -1.11달러로 떨어져 가동할수록 적자를 내는 구조다.

중동과 인도, 중국 등의 대규모 정유시설 증설 탓이다. 복합정제마진도 지난해 11월 배럴당 7.41달러에서 12월 6.05달러로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말에도 국제유가가 3개월여 만에 배럴당 140달러에서 40달러대로 급락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며 “최근에는 국제유가 급락과 글로벌 수요부진, 석유제품 공급과잉 등이 겹쳐 정유업계의 경영난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첩첩산중 쌓이는 악재

정유업계가 직면한 악재는 국제유가 급락만이 아니다. 나프타용 원유에 대한 관세 부과, 바이오디젤 의무 혼합비율 상향, 탄소배출권 규제 강화 등의 정부 정책에 따른 부담도 더욱 커지고 있다.

정유업계는 올해부터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용 원유에 1%의 관세가 부과돼 매년 1100억원 안팎의 세금을 새로 떠안게 됐다.

오는 8월부터는 바이오디젤 의무혼합비율이 2%에서 2.5%로 높아져 경유에 의무적으로 섞어야 하는 팜유 등 바이오연료 구매 부담도 지난해 85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어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으로 정유업계가 올해 부담해야 할 비용만 2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