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학고재의 大知無碍
‘생성의 자유’라는 전시회 명칭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중국어 표기는 ‘대지무애(大知無碍)’다. ‘큰 지식에는 걸릴 것이 없다’는 뜻으로 ‘장자(莊子)’의 첫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구절 ‘소지불급대지(小知不及大知)’와 불교용어 ‘무애’를 합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중국 상하이 분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현지에서 열고 있는 전시회(2014년 12월20일~2015년 2월8일) 이름을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와 철학을 중시하는 중국 미술계의 정서를 겨냥한 네이밍이다.

한국의 단색화 중국서 인기

한국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79) 정상화(83) 하종현(80) 3인의 작품을 내 건 이 전시회에선 작가들마다 독창적인 방법론과 형식을 엿볼 수 있다. 서구 미니멀리즘을 동양적으로 재해석한 일본 전위미술 ‘모노하(物派)’의 창시자 이우환은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관계항’시리즈를 내놓았다. 캔버스 대신 마대 천의 뒷면에서 물감을 짓이겨 밀어 넣은 하종현의 ‘접합’, 물감을 뜯어내고 다시 메우기를 무수히 반복해 온 정상화의 ‘무제’ 등은 말 그대로 ‘거침없는’ 제작과정을 보여준다.

‘한국적 미니멀리즘’ 또는 ‘모노크롬 페인팅’이란 말로도 통하는 한국의 단색화는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사조(思潮)로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모으는 추세다.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9월 대규모 ‘단색화의 예술’전을 연 데 이어 오는 5월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의 단색화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후 미국의 추상미술과 일본의 모노하, 한국의 단색화는 각자 문화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미술양식을 만들려는 시도”(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 관장)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 단색화의 인기는 학고재 상하이 전시회의 판매실적에서 확인됐다. 정상화 하종현의 작품 여섯 점이 적게는 10만달러, 많게는 35만달러에 팔렸다. 중국과 대만 컬렉터들이 샀다는 전언이다. 경매가 아닌 해외 전시회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이 팔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덕분에 학고재 상하이분점은 진출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K드라마 K팝 등에 이어 중국 시장에서 K아트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단색화가 K아트 또는 아시아 미술운동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으려면 중요한 숙제가 있다. 중국에선 보통 미술품을 거래할 때 판매액의 35%까지 과세하지만 상하이 경제특구에선 면세 혜택이 주어진다. 2013년부터 6000만원 이상인 작고 작가의 미술품 거래에 20%의 양도소득세를 매기고 있는 한국에선 꿈같은 일이다. 또 기업이 그림을 살 때 손비처리 한도(현행 500만원)를 3000만원으로 높여야 국내 미술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미술계 주장이다.

미술품 세제혜택 뒷받침해야

18세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풍 또는 중국취미)’나 19세기 중·후반의 ‘자포니즘(Japonism·일본풍)’은 세계 문화예술계의 문화적 심취와 미학적 변화를 이끌었다. 시누아즈리가 도자기, 자포니즘이 채색판화부터 시작했듯이 한국의 단색화가 ‘대지무애’의 경지로 세계시장에서 큰 흐름을 형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최명수 문화스포츠부장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