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痛恨 "땀 흘려 일군 동부, 구조조정 쓰나미에 초토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사진)이 2일 “지난 반세기 동안 땀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됐다”며 “구조조정에 나선 지 1년이 경과한 지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력사인 동부제철의 경영권을 빼앗긴 데 이어 동부그룹 모태인 동부건설이 지난달 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죽어가는 그룹을 떠맡겨 놓고는 책임을 채권단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했다.

김 회장은 이날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구조조정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룹의 비금융 계열이 모두 와해돼 버렸다”며 억울한 심정을 임직원들에게 털어놨다.

동부는 2013년 11월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 등을 골자로 한 2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다.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끌어내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그룹을 살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구조조정은 결국 동부건설, 동부제철 등 비금융계열 대부분을 잃는 식으로 일단락됐다. 재계 18위였던 동부그룹은 30위권으로 추락했다.
김준기의 痛恨 "땀 흘려 일군 동부, 구조조정 쓰나미에 초토화"
김 회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것은 정책금융기관 주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 체질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1년이 경과한 지금 동부는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패키지 딜(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매각) 실패, 동부익스프레스·동부발전당진 등 자산 헐값 매각 등을 ‘불합리’의 사례로 들었다.

김 회장은 선제적 구조조정 실패의 원인으로 산업은행을 지목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기업의 긴급한 유동성 지원 요청이 외면받는 가운데 기업가 정신은 위축되고 성장을 위한 투자와 고용은 메말라가고 있다”며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 주도의 사전적 구조조정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부그룹과 채권단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특히 김 회장의 아들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14.41%)에 대한 담보 제공 여부가 최대 쟁점이었다. 그간 채권단은 추가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김 부장의 지분을 담보로 내놓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반면 동부 측은 “김 회장의 지분 전부와 개인 재산까지 담보로 맡겼는데, 2세의 지분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고 맞서왔다.

이 밖에 패키지 딜 실패, 주요 계열사에 대한 실사 결과 등을 놓고 양측은 번번이 마찰을 빚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차라리 동부에 구조조정을 맡겼으면 이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김 회장의 발언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동부발전당진은 실사 결과 자산가치가 동부 주장보다 턱없이 낮아 매각 자체가 어려웠다”며 “패키지 딜을 제안한 것은 동부를 돕기 위해서였다”고 반박했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측근에게 답답함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상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전제로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제 와서 채권단을 비판하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원인이야 어찌됐건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기업을 살리고자 시작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며 “대주주의 책임 소재를 어디까지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남윤선/박종서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