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비즈니스인 ‘농업’에 억만장자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산업으로 꼽히던 농업이 첨단 혁신 산업으로 떠오르면서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은 농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로봇 등 첨단 기술을 앞다퉈 개발 중이다. 억만장자 투자자와 사모펀드는 식품 벤처기업에 투자를 늘리거나 농장을 사들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클린테크그룹에 따르면 올 3분기에만 총 41건, 2억6900만달러(약 3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실리콘밸리 농식품 스타트업에 몰렸다. 이 시장은 지난 5년간 연평균 63%씩 성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첨단 식품 산업은 빅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보다 더 커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IT 거물들 '푸드 테크'…실리콘밸리 '인공 달걀' 등에 거액 베팅
○농식품 산업, 실리콘밸리 ‘황금알’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아시아 최대 부호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제리 양 야후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세브린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최고경영자(CEO) 등은 최근 한 회사에 거액을 투자했다. 식물성 원료로 인공 달걀, 마요네즈 등을 만들어내는 햄프턴크리크푸드다. 2011년 50만달러의 자금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억만장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현재 1억200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처럼 억만장자들이 식품 산업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인구 급증으로 인한 식량 부족 현상 때문이다. 미 글로벌하비스트이니셔티브(GHI)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인구가 최소 90억명에 이르고, 한국 등 동아시아의 식량자급률은 67%로 떨어질 전망이다.

햄프턴크리크푸드처럼 대체 식품을 개발하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농업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로봇과 무인기를 이용해 농작물을 자동으로 관리해주는 시스템, 빅데이터를 활용해 현재의 토양과 기후, 수분 등을 분석해주는 소프트웨어 등은 이미 보급됐다. 스마트가드너, 소일IQ, 블루리버테크놀로지, 파머론, 로컬푸드랩 등이 주목받는 스타트업이다.

기존 농장을 사들이는 부호들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팜랜드는 미 전역의 낡은 농장을 사들여 친환경 목장 등으로 바꾸는 중이다. 페이팔의 주주였던 스콧 배니스터와 전 페이스북 CEO 오웬 반 나타 등이 팜랜드에 투자했다. 세계 최대 유전자조작(GMO)식품 회사이자 제초제 기업인 몬산토는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기후 빅데이터 스타트업인 클라이밋코퍼레이션을 9억3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스마트팜’ 베팅하는 아시아 IT기업들

아시아를 대표하는 정보기술(IT)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7월 중국 최대 유가공업체 이리의 축산 자회사를 20억위안(약 3260억원)에 사들였다. 알리바바는 생산부터 가공까지 책임지는 자체 유가공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레노버도 마찬가지다. 류촨즈 레노버 회장은 지난해 농업 자회사인 자워그룹을 설립, 10억위안을 투자해 키위와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IT기업들은 첨단 기술로 채소를 재배하는 ‘스마트팜’에 눈을 돌리고 있다. 파나소닉은 지난 8월부터 싱가포르 식물공장에서 재배한 채소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파나소닉은 시내 외곽의 공장 건물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인공광을 통해 작물을 재배한다.

파나소닉은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양을 맞추기 위해 방문객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바 히데키 파나소닉 팩토리솔루션아시아퍼시픽 이사는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고품질 식품의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농업은 잠재적인 성장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후지쓰는 생산설비 해외 이전으로 남아도는 일본 내 반도체 생산설비 가운데 후쿠시마 등 일부 지역의 공장을 식물공장으로 변경해 운영하고 있다. 청정도 유지가 생명인 반도체 생산설비의 특성과 무균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식물재배 환경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현재 하루 3500포기의 양상추를 생산하는 후지쓰는 농산물 부문 매출이 올 150만달러에서 2016년 400만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공장을 개조한 식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도시바도 2015년까지 연간 매출을 290만달러로 늘릴 방침이다. 샤프는 두바이에 있는 식물 공장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김보라/김순신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