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오일머니’의 한국증시 유입에 제동이 걸렸다. 유가 하락 여파로 자금운용 여력이 예전 같지 않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주식투자 포트폴리오를 바꾸기 시작한 것인지 주목된다. 유럽계 자금을 필두로 주요 선진국 자금도 달러화를 비롯한 안전자산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규모를 키웠다.
매도로 돌아선 '오일머니'
○중동자금 12월 순매도 전환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주식을 2170억원어치 순매수했던 중동자금은 이달 들어 18일까지 780억원어치 순매도로 전환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 주요 4개국 자금은 올 하반기(7~11월) 1조1330억원 넘게 한국주식을 순매수했지만 12월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중동자금은 아랍에미리트가 5월 한 달 동안 1조1720억원 상당의 주식을 쓸어 담고, 카타르가 4~8월 8160억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등 올 들어 한국증시에 순유입된 대표적인 외국계 자금으로 꼽혀왔다. 중동자금은 유가가 꺾이기 시작한 9월 이후에도 한국증시에 월간 2000억원대 규모 순매수를 유지했지만 ‘유가 치킨게임’이 본격화된 11월부터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다른 중동국가부터 매도물량을 늘렸다. 그나마 매수세를 유지했던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달 900억원 순매도를 기록하면서 중동자금 이탈이 본격화됐다.

‘오일머니’의 매도전환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를 제외한 대다수 산유국의 원유 생산원가가 배럴당 50~60달러 이상인 상황에서 지난 1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가 배럴당 54.11달러까지 주저앉으며 중동국가들의 자금여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중국 영향력만 커져

중동자금과 함께 유럽 미국 등 선진국 자금도 한국증시에서 빠져나가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저유가 충격으로 러시아 외환위기와 그리스 정국 불안 같은 악재가 불거진 영향으로 이달 유럽계와 미국계 자금이 일제히 매도세로 돌아섰다.

유럽(영국·룩셈부르크·아일랜드·독일)계 자금은 지난달 4850억원 순매수에서 이달 9290억원 순매도로 전환했다. 영국은 이달에만 6110억원을 팔아치우며 올 들어 7조4220억원이나 순매도했다. 안정적인 유입세를 보였던 미국계 자금도 지난달 8930억원 순매수에서 이달 5340억원 순매도로 뒤집혔다.

반면 일본과 중국 자금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최근 3개월 연속 순매도했던 중국계 자금은 이달 다시 1030억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일본공적연금(GPIF)의 해외주식 투자 확대 전략에 힘입어 일본 자금도 이달 들어 7710억원 상당의 국내 주식을 쓸어 담았다. 작년 4060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던 일본은 올 들어 3조7780억원 순매수하며 미국(3조9590억원)에 이어 순매수 규모 2위를 차지했다. 중국계 자금도 2조400억원 순매수로 3위를 기록했다.

노아람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내년 초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면 외국인 자금 유출세는 다소 완화될 것”이라며 “다만 강도 높은 양적 완화가 아니라면 큰 유입세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