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회계는 경제안전망이다
“감사를 제대로 받으려면 감사보수를 얼마 내면 됩니까?” 모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올초 외부감사인을 맡은 회계법인에 이 같은 질문을 했다. 회계법인은 “감사보수가 지금보다 세 배는 많아야 적정 감사인원과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CEO는 감사인의 의견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해당 기업과 계열사 두 곳의 감사보수를 세 배 이상 인상했다.

이 사례는 회계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동안 기업들은 감사보수를 ‘비용’으로 생각해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기업이 스스로 감사를 제대로 받아보겠다며 감사보수를 인상한 적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다. 회계업계도 턱없이 낮은 감사보수 제안에 ‘노(No)’라고 하지 못했다. 감사를 받는 기업으로부터 재무제표를 대신 작성해 달라는 부적절한 요청도 물리치지 못했다. 회계업계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이다.

감사보수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적정 감사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정 인력으로 적정 시간을 들여 감사한다면 부실 감사 위험은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평균 감사 투입시간 지침’을 만들었다. 감사 대상 기업의 감사 투입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대형 회계법인들이 업종별, 자산 규모별로 감사 투입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평균치를 구해 감사 투입시간 기준을 만들었다. 공인회계사회는 올해부터 평균 감사 투입시간을 지키지 않은 감사인에 대해선 금융감독원에 특별 감리를 요청할 계획이다.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사인이 적정한 감사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회계부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소위 잘나가는 벤처기업인 모뉴엘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이 기업은 매출 부풀리기로 대규모 사기대출을 받았다. 한 벤처기업이 정부기관과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조 단위의 사기대출을 벌이고 있는데도 그 어떤 경고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빌 게이츠로부터 칭송받은 혁신 기업이란 그럴듯한 겉포장에 속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사회안전시스템 구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경제에 대한 안전시스템은 여전히 부실한 상황인 것이다.

회계는 ‘경제 안전망’이다. ‘회계’라는 경제 안전망이 무너지면 기업의 신뢰뿐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 무너진다. 회계는 기업들에 부담을 주는 ‘비용’이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 나아가 국가를 위한 ‘공공재’인 것이다. 국회에서는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안 제정과 개정이 늘고 있고, 정책당국에서도 지정 감사인 제도를 확대하는 등 회계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젠 기업과 경영자의 인식이 바뀔 차례다. 기업과 감사인이 ‘갑을관계’에 있는 이상 회계사와 회계법인에 대해 채찍을 든다고 해서 분식회계 사고를 없애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과 경영자는 투명한 감사를 통해 자본시장과 직원, 거래처 등 이해 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이것이 결국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업과 경영자의 감사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비로소 감사보수는 제자리를 찾고 적정 감사시간 확보와 감사 품질 향상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954년 계리사회로 출발한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 11일 환갑을 맞았다. 1만8000여 공인회계사들은 국가 경제와 함께한 격동과 변화의 60년을 넘어, 희망의 60년으로 가기 위해 ‘자본주의 파수꾼’으로서 전문성을 높이고 윤리성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이다. 나아가 국가, 기업, 가계 등 경제 주체가 함께 인식전환을 통해 회계를 ‘국가 경제의 안전망’으로 바로 세웠으면 한다.

강성원 <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